산머루가 익어가는 우이동 기슭.

북한산이 긴 팔을 벌려 가을 햇살을 어루만지는 곳에 작은 방이 있다.

신과 구원의 문제를 화두로 끊임없이 고뇌해온 작가 정찬(45)씨.

그는 이곳에서 "시간의 무게를 견디는 소설"을 쓴다.

창동 집에서 마을 버스로 15분이면 닿는 곳.

이 침묵의 방은 그가 오롯이 작품에 몰두할 수 있는 "사유의 집"이다.

생각이 너무 깊어지거나 머릿속이 하얗게 비는 날엔 산길을 걷는다.

상수리 나무 잎사귀를 흔들며 "지상의 슬픔"들이 "천상의 빛"으로 환하게
피어 오르는 모습을 떠올린다.

등단 15년, 그는 희생제의를 통한 구원모색이라는 남다른 주제를 고집스레
파고 들었다.

"기억의 강" "완전한 영혼" "아늑한 길"등 3권의 소설집에서도 언어의
타락과 파편화된 삶을 그렸다.

올해초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고 묵언의 정진을 거듭해온 그가 드디어
첫 장편소설 "세상의 저녁"(문학동네)을 들고 문 밖으로 나왔다.

상처받은 남녀의 사랑을 매개로 신과 인간의 관계, 진정한 구원의 의미를
묻는 작품이다.

주인공 황인후는 가톨릭 신부의 사생아로 태어나 간질병을 앓고 있다.

양수리의 이종사촌 별장에 칩거하던 그는 강혜경이라는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그들 사이에 태어난 아이는 선천성 심장기형으로 죽고 만다.

그는 새생명을 구해달라는 간절한 기도가 헛되자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수도원으로 잠적한 뒤 극심한 자학에 시달리며 "정신적 사생아"로 거리를
떠돈다.

아이를 살려주지 않는다고 신을 증오하며 기도로 기적을 이루겠다고
집착했던 것이 스스로의 교만에서 비롯됐다는 걸 깨닫는 인후.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쳐 속죄하겠다며 병든 노인들을 보살피다 눈 쌓인
거리에서 무릎을 꿇고 마침내 눈을 감는다.

세기말에 읽는 "세상의 저녁"은 노을진 시골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동짓연기 오르는 마을 안 쪽에서 하늘과 땅의 접점인 무색계로 길을
떠나는 사람들.

모두의 마음속에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신의 형체를 찾아 가는 구도자의
행렬이 연상된다.

작가는 이것을 "인간 영혼의 신비와 존재의 궁극을 탐색하는" 과정으로
형상화했다.

극한적인 고통과 절망의 끝을 보아버린 남자는 슬픔의 우물 속에서
하늘길로 통하는 빛의 두레박 줄을 타고 승천한다.

그의 구도과정이 이상을 향한 수직축이라면 여자와의 사랑은 현실세계의
수평축이다.

이 경계에서 "진정한 사랑과 희생이야말로 구원으로 가는 디딤돌"이라는
섭리가 꽃핀다.

"황인후는 가장 깊은 상처를 지녔기에 신성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지요.

물론 강혜경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 사랑이 궁극에 이르는 다리이자 가장 높은 곳으로 승화시키는 힘의
원천이죠"

작가는 "소설의 숲으로 들어온 독자들이 새롭고 낯선 세계와 만나면서
삶의 심연을 발견하고 정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안내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도 우이동 산자락을 밟으며 "인간이 신성에 도달하는 길"을
생각한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