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장순업씨의 그림엔 과거에 대한 짙은 향수가 묻어 있다.

거침없이 흘러가는 세월의 뒤편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기억의 원형, 그것을
잡아내 형상화하는 것이 그의 작업내용이다.

그의 작품은 오랜 시간동안 빛바랜 회벽을 연상시키는 질감과 색채를
지녔다.

작품속에 나타나는 각 형상의 경계가 애매하게 처리되는 것도 불분명한
기억을 찾아내는 일과 무관하지 않다.

전체적인 작품톤은 추상화의 범주에 들지만 실재하는 형상이나 이미지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지 않은 것이 작품의 특징이다.

크고 작은 붓질은 화면을 짜나가기위한 조형적 구성요소인 동시에
전체적으로는 나무둥치와 장승 춤동작 서체등 구체적 사물이나 이미지를
닮았다.

작가에게 이들 이미지는 세상 어디엔가 한때 존재했던 단순한 사물이나
현상이 아니라 기억의 원형을 더듬어가는 매개물이다.

어차피 삶이 불완전한 것이고 그 불완전함을 메워가며 삶을 지탱시켜주는
것이 과거에 대한 향수라는 메시지가 그의 작품엔 담겨 있다.

15~24일 조선일보미술관(735-8902)에서 여는 개인전 출품작에서도 이같은
특징은 변함없이 드러난다.

"빛과 시간의 유물"을 주제로 한 이들 근작은 과거에 비해 색채사용이
적어지고 수성이나 유성안료위에 번져나가는 먹의 효과가 두드러지는
경향을 보인다.

미술평론가 고충환씨는 그의 작품을 "실재와 추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기억의 원형 이미지를 형상화한 작업"이라고 평했다.

< 이정환 기자 / jh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11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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