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신경림(63)씨와 소설가 박완서(67)씨가 "노을"과 "두부"를 통해
우리시대의 아픔을 그렸다.

두사람은 계간 "내일을 여는 작가"봄호 산문특집 "저무는 20세기를
바라보며"에서 자신의 문학적 토양과 우리사회의 그늘을 노을과 두부라는
거울로 비췄다.

신경림씨는 자신의 문학이 "노을"에서 비롯됐다고 밝혔다.

"까마득히 먼 고개 위 하늘에 노을이 발갛고 그 속으로 새까맣게 날아
들어가는 갈가마귀떼들"이 "기억의 영사막에 찍혀있는 가장 오래된
그림"이라는 것.

이 노을의 그림 속에는 시골 당숙과 창돌애비가 들어있고 홍은동
산동네에서 보낸 서울살이의 매운 맛도 배어있다.

"붉은 노을 속에/까마귀들이 우짖는"("밧줄"), "지나간 모든 날들을 스스로
장미빛 노을로 덧칠하면서"("흔적"), "교회에서 들리는 풍금소리가/노을에
감기는 저녁"("성탄절 가까운") 시인은 "홍은동 산비알에서 바라보던 노을이
가장 큰 그림"이라고 말한다.

"구지레한 살림살이와 달리 노을은 빈민촌에서도 아름다웠다"고 쓴 그의
속내는 작품속에 그대로 투영돼 있다.

"홍은동 산동네는 내가 60년대 말/사글세를 살던 곳/공동수도에서 물을
받아지고 층계를 올라가면/아이를 업은 아내가 덜 마른 연탄에 불을 붙이고
있었지"("세월이 참 많이도 가고"), "좁은 방 안 가득 모여 앉은 동네
아낙네들/남정네를 꺼리지 않는 농익은 음담속에서/아내의 야윈 손이 가발을
손질한다"("귀뚜리가 나를 끌고 간다")

시인 도종환씨도 신씨의 최근 시집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해설에서
"그의 시를 읽다보면 당시의 꽃피는 아침 화단보다 송시의 노을지는 저녁
나루터 길이 떠오른다"고 표현했다.

박완서씨는 "두부"를 통해 콩비지처럼 버무려진 시대의 아픔을 얘기한다.

작가는 대통령 취임식장에 나타난 전두환 전대통령의 표정에서 그의
재임중 옥살이한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린다.

"콩밥"먹고 나온 사람에게 제일 먼저 먹이는 두부.

범죄자에게는 나쁜 짓 다시 하지 말라는 의미지만 독재시절의
민주투사에게는 일종의 영예로 여겨지던 두부사례.작가는 전직 대통령뿐만
아니라 고위공직자들의 "거짓 위에 거짓을 덧칠한 회고록"보다 차라리
"두부를 향해 고개 숙인 모습을 보고 싶다"며 "무미의 두부 속에 그다지도
쓴 맛이 숨어있다는 걸 맛본 적이 있는 권력자가 단 한 사람도 없는"현실을
개탄한다.

이같은 그림은 박씨의 초기작 "조그만 체험기"에 이미 그려져 있다.

78년 출간됐다 절판된 소설집 "배반의 여름"(창작과비평사)에 실린 단편.

재생형광등을 싸게 사들여 팔다 구속된 남편을 구하려고 허둥거리는
아내의 얘기다.

남들이 귀띔해주는 "빽줄"은 커녕 관청 수위 한 사람도 알지 못하는
소시민.

"우리 부부의 생애, 합하면 근 1세기의 기나긴 생애를 말짱 헛 산
것처럼" 느낀 그녀는 수사관과 변호사에게 "떡값"을 뜯기면서 기막힌
요지경 세상을 체험한다.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권력 주변의 폭력을 그린 이 작품은 세월이 변한
지금에도 "두부"와 함께 삶의 근본을 돌아보게 만든다.

< 고두현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