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보자기에는 몬드리안이 있고/
폴 클레도 있다./
가장 먼 거리에 있는 것들끼리의 결합/
고금을 넘어선 세계성을 지니고 있다"

김춘수 시인이 보자기의 미학을 노래한 대목이다.

전통문화 되살리기에 평생을 바쳐온 허동화(72) 사전자수박물관장이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규방문화"와 "세상에서 제일 작은 박물관
이야기"(현암사)를 한꺼번에 내놨다.

허씨는 30여년동안 우리의 옛보자기와 자수품 등 훼손과 해외유출 위기에
처한 규방문화재 3천여점을 수집하고 미술사 자료로 활용할수 있게 정리한
문화재지킴이.

"나라살림이 어려울수록 정신의 풍요로움을 지녀야 합니다.

특히 우리 옛여인들이 보여준 생활속의 지혜와 정성은 오늘의 위기를
치유하는 명약이 될수 있습니다.

세월이 변해도 여성의 역할과 힘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는 "오직 우리 문화재를 수집하는 데서 보람을 느껴왔다"며
"미술계에서 늦게나마 우리 민화의 작품성과 회화성을 재조명하는 작업이
이뤄지듯 자수와 보자기의 예술성도 제대로 평가돼야겠기에 책을 냈다"고
말했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규방문화"는 현대사회에서 생활의 뒷전으로
밀려나 점차 사라져가는 전통 규방 생활용품을 시대.종류.지역별로 나눠
조명한 것.

현대문명의 위세에 눌려 이제는 퇴물이 되다시피 한 옛 규방용품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실용적인가를 새삼 깨닫게 한다.

한국여인의 삶이 오롯이 담긴 바느질 도구와 직물회화의 절정을 이룬
보자기, 넉넉한 마음과 멋스런 정취를 담은 수주머니, 호롱불 밑에서 한땀
한땀 빚어낸 자수침장, 오색실로 공들여 꾸민 수베갯모, 자투리천을 이어
만든 조각보 등 우리 조상들의 멋과 지혜가 배어있는 명품들이 1백여장의
컬러사진과 함께 소개돼 "보는 즐거움"까지 제공한다.

"세상에서 제일 작은 박물관 이야기"는 저자가 30여년간 규방여인의
전통 세간살이를 수집하고 박물관을 운영하면서 겪은 일과 수집가로서의
자세등을 기록한 자전적 에세이집.

실로 짠 것이면 어디든 달려가 구입하고 10년을 공들여서라도 꼭
구해오던 열정과 40여차례의 국내외 전시회를 통해 우리 규방문화의
진가를 세계에 알린 그간의 여정이 담겨 있다.

그는 수집가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환금성을 위해 희소하고 값비싼 것을
수집하는 일은 삼가라"고 조언했다.

돈때문에 모은 것은 반드시 제 품을 떠난다는 것.

"꼭 발품을 팔아서 가능하면 적은 종류를 모으라"는 게 그의 체험적
수집론이다.

< 고두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