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혜숙 < 소설가 >

불안한 사회 탓인가.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문학세계 속에 지친 육신을 달래고 정신을
고양시켜야겠다며 찾아낸 책은 독일판 "미녀와 야수"라 불리고 있는
"나의 사랑 슈테가르딘"(게르트 호프만 저.찬섬)이다.

문학작품이란 감동과 깨달음을 동시에 줄 수 있을 때 본래의 제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 있다.

전자는 우리의 삶을 "흥겹게"하고 후자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다행히 현대독일문단에서 이런 두 요소를 충족시킬 만한 작가와 작품을
만날 수 있어 기뻤다.

"나의 사랑 슈테가르딘"의 저자 게르트 호프만은 프라하 비평가
상 잉게보르크 바흐만 상 등 독일의 저명한 문학상을 여러 차례 수상한
작가로 작품 전체에 흐르는 풍부한 언어감각, 그 속에서 반짝이는 풍자,
간결하고 위트 있는 문체 등이 살아 꿈틀거려, 읽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미소짓게 하고 마음을 따뜻하게 감싼다.

18세기 중엽 독일 괴팅겐 대학의 철학교수 리히텐베르크는 넘칠 듯한
학문적 탐구욕과 비상한 머리를 지닌 지성인이다.

우연히 길거리에서 꽃을 파는 나이어린 소녀 슈테가르딘을 만난 그는
첫눈에 사랑에 빠져 그녀를 집으로 데려와 보살핀다.

리히텐베르크는 이 작은 소녀의 움직임 하나하나에도 전율할듯한 감동과
환희를 느끼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들을 경험하며 순수하고 애절한
사랑을 나눈다.

그로부터 4년 뒤 슈테가르딘은 열병에 걸려 뜻밖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리히텐베르크는 1백43cm도 안 되는 키에 앙상한 팔다리, 대머리에,
썩어 문드러진 이빨, 어마어마한 곱사 등을 지닌 "야수"같은 외모인데
반해 슈테가르딘은 반짝이는 긴 금발에 날씬한 몸매, 청순하고 어여쁜
얼굴을 지녔다.

또한 리히텐베르크는 35세이나 먹은 "어른"이지만, 슈테가르딘은 아직
사춘기도 경험하지 못한 겨우 13세의 "아이"이다.

주의의 차가운 시선과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서로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서로의 감정을 아름답게 승화시킨 두 사람.

이들을 하나로 묶는 실마리는 결국 때묻지 않은 "사랑"인 것이다.

동화 같으면서도 동화 같지 않은 사랑 이야기 "나의 사랑 슈테가르딘"은
어둠 속 등대와 같은 기쁨을 준다.

방학을 맞이하여 얄팍하고 문학성 떨어지는 저급의 책들만을 섭취하는
우리의 청소년들, 진정한 사랑의 전설을 잃어가고 있는 성인들에게 가장
값진 선물이 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