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나 없이 어려운 시대.

자신을 추스리고 진로를 모색하는 성찰의 시간이 필요한 때다.

전대호(30)씨의 시집 "성찰"(민음사)과 이명찬(37)씨의 "아주 오래된
동네", 고재종(41)씨의 "앞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문학동네)에는 진지한
자기성찰의 시들이 담겨 있다.

"충분히 중력을 벗어난 것인지/그래서 이젠 작은 힘만으로도/날 수 있는지
/확실한 것은 다만 어둠/비어가는 연료통/이제 순간을 사랑하지 않고는/
한 발자국도 갈 수 없으리/떼어내고 작아져야 하리"

전대호씨의 "분리형 로케트" 전문이다.

망망한 우주에서 자기 몸을 줄여 앞으로 나가야 하는 로케트의 운명이
지금의 우리 처지와 닮았다.

그는 "큰 수고 없이/생육하고 번성"했던 지난 시절의 풍경 위로 너무
높게 올라가버린 "철탑"을 가리키며 "바벨탑이든 쟈크의 콩나무든" 모두
동원해서 욕망의 탑을 견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3행짜리 "멀미"를 통해 "저 수평선은 언제쯤/나날이 새로운
이 흔들림을 멈추고/수평해지려는가"라고 묻는다.

전기톱에 잘린 가로수처럼 "얼굴 없이 통해야 하는/힘든 날이 왔음을"
일깨우며 말과 표정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서로를 들여다 보라고 권한다.

고통의 집을 지고도 달팽이나 두더지처럼 길을 찾아 나서는 이유도
제시돼 있다.

"그가/누구이든 누구든/나처럼 무지막지한 믿음만으로/벽에 머리를
부딪히면서/천천히 이리로 오고 있다는/믿음"이 우리에게 힘을 주기
때문이다.

이명찬씨는 지금의 우리를 "자신의 꼬리를 먹어들어간/한 마리 거대한
뱀"에 비유하면서 그때문에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또다른 우리를
질책한다.

도시는 "사람들 이마 위에 별 하나 뜨지 않는" 삭막함으로 가득하다.

그래도 절망과 희망의 경계에서 깨달음의 씨앗을 발견하는 시인의 눈빛은
따스하다.

"나를 지우고 나의 서슬조차 누르고/내밀하게 서로 섞여드는 일/그렇게
이룬 한 물결의 아득함/지워진 내가 모여 풍경이 되는 자리에/노을처럼
피어나는 아름다움"("사랑법"부분) 고재종씨의 "수선화, 그 환한 자리"에도
한 차원 높은 세계에 도달하기 위한 성찰의 과정이 그려져 있다.

"거기 뜨락 전체가 문득/네 서늘한 긴장 위에 놓인다/아직 맵찬 바람이
하르르 멎고/거기 시간이 잠깐 정지한다/저토록 파리한 줄기 사이로/
저토록 환한 꽃을 밀어올리다니/네 서늘한 기운을 느낀 죄로/나는 조금만
더 높아야겠다"

< 고두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