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최고의 풍자가".

9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이탈리아 극작가 다리오 포(72)에게 세계
문화계가 붙여준 별칭이다.

그는 60년대초부터 20여편의 작품을 통해 권력과 권위주의가 인간에게
가한 억압과 폭력을 강도높게 비판해왔다.

그의 작품에는 경찰과 정보기관, 가부장적 권위 등에 의해 현대인이
어떻게 억눌리고 있는지 상징적으로 잘 드러난다.

대학로 하늘땅소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돈내지 맙시다"(극단 진,
3월2일까지)와 15일 신촌 산울림소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사고사"(극단 산울림, 3월15일까지)는 다리오 포식
정치풍자극의 대표적인 작품들.

"돈내지 맙시다"는 연일 치솟는 물가때문에 벌어지는 근로자 가정의
일들을 코믹하게 그렸다.

무대는 변두리공장지대 초라하기 짝이 없는 아파트.

매일매일 물가가 오르자 몇몇 근로자 부인들이 물건을 훔치기로 한다.

물건값을 하루아침에 두배나 올린 것에 격분, 이같은 행동을 저지른
것이다.

경찰이 출동, 가택수사를 시작하자 겁먹은 부인들은 엉겹결에 훔친
물건을 옷에 숨긴다.

삽시간에 온동네 여자들이 임신부가 되어 경찰과 쫓고 쫓기는 상황이
벌어진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물가고때문에 선한 삶을 포기하는 과정이
다소 섬짓하게 느껴진다.

평일 4시반, 7시반. 토 일 3시, 4시반, 7시반.

문의 : 747-9393.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사고사"는 다리오 포의 대표작.

1921년 미국에서 일어난 실화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불문학자 오증자씨가 번역했고 채윤일씨가 연출했다.

이탈리아 밀라노시 형사부장실.

공직 사칭으로 12번이나 체포됐던 미치광이가 정신과의사로 행세하다
또다시 잡혀온다.

심문받는 과정에서 그는 열차폭파사건 혐의자로 체포돼 조사받다 숨진 뒤
투신자살한 것으로 발표된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사건기록을 우연히 훔쳐본다.

미치광이는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고등법원 판사로 변장, 정보부서의
기록을 낱낱이 살펴본다.

그 결과 무정부주의자의 죽음은 결국 정치적 책략의 제물이었음이
밝혀진다.

이 연극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다리오 포 특유의 대사와 구성.

진지함과 코메디가 뒤죽박죽돼 비극과 소극이 엉켜있다.

그는 정치구조 자체가 본래 황당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정치를 다루는 연극도 황당하게 표현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판단한다.

90년 이 작품을 연출했던 채윤일씨는 "이 작품을 대할 때마다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이 떠오른다"며 "권위주의 정치의 종식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미치광이 역에는 "남자충동"과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열연, 호평받은
안석환씨가 맡았다.

대학로극장 대표 정재진씨와 중견배우 이창직씨가 각각 시경국장과
형사부장으로 등장한다.

평일 오후7시. 금 토 공휴일 오후3.7시. 일요일 오후3시.

문의 : 334-5915.

< 박준동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