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연출가 5명이 신년무대에 실험성 짙은 창작극 한편을 올린다.

98년 1월7일부터 서울 동숭동 연극실험실 혜화동일번지(764-3380)에서
공연하는 "열애기"가 그것.

연극실험실 혜화동일번지는 94년 이윤택 이병훈 김아라 채승훈 등 7명의
40대 연출가 그룹이 공동투자해 설립한 극장.

그동안 작품성 뛰어난 창작극을 주로 올려 한국연극의 새로운 좌표를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번에 참가하는 김광보(장수하늘소) 박근형(76단) 손정우(표현과상상)
최용훈(작은신화) 이성열(백수광부)씨 등 30대 연출가 5명은 혜화동일번지
2기 동인인 셈.

이들은 스토리 위주의 드라마에서 과감히 탈피, 새로운 형식과 내용의
연극을 추구하겠다고 다짐했다.

"열애기"는 이같은 시도의 첫 결실.

주제는 "사랑", 주연출자는 장소하늘소 대표 김광보씨다.

사창가 근처 주택가에 세들어 사는 신혼부부.

이들의 꿈은 하루빨리 그 동네를 벗어나 시내로 진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넉넉치 못한 벌이에 이들의 소망은 멀어져만 간다.

어느날 그들에게 초라한 사내 한명이 나타난다.

여자가 결혼전 잠시 만났던 사람이다.

사내는 추억의 편린을 붙잡고 여자를 찾아왔지만 완전히 무시당한다.

기억하지 못하겠다는 말만 듣는다.

그를 받아주는 사람은 때묻은 여자 창녀뿐.

그러나 따뜻한 구원마저도 하룻밤만에 끝난다.

연출가들은 "사랑"이 발붙이기 힘든 현실을 고발한다.

사내는 추억을 사랑하고, 여자는 돈을 사랑하고, 창녀는 모든 남자를
사랑한다.

사랑은 많지만 그 연결고리는 90년대에 완전히 끊어진 것으로 해석한다.

"고래사냥" "칠수와 만수" "겨울나그네" "깊고푸른밤" 등 70,80년대식
사랑에 남아있던 낭만적 요소를 제거한 것이 바로 90년대 "열애기"다.

2월중순 "열애기"가 끝나면 "자유무대5"(작은신화) "쥐"(76단)
"굿모닝, 체홉"(백수광부) "공중전화"(표현과상상) 등 동인들의 작품
공연이 이어진다.

그러나 실험성있는 연극, 퍼포먼스, 무대미술 등 문화관련 종사자들의
모임과 작업공간으로 누구에게나 개방하겠다는 게 혜화동일번지 2기동인들의
뜻이다.

수익금은 연극계 차세대 주역들에게 재투자된다.

< 박준동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