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새 뒤면 98년 새해.연말연시라지만 심각한 경제위기때문에 여느해처럼
들뜬 기분으로 지내기는 어렵다.

가족 친구와 함께 밝고 아름다운 영화, 사색적인 영화를 보면서 자신과
주위를 되돌아보면 어떨까.

마침 극장가에는 로맨틱코미디 "인연"과 "죽이는 이야기" 정적이고
깊이있는 이란영화 "체리향기"와 "가베", 명쾌한 애니메이션 "천녀유혼"
등 다양한 영화가 나와 있다.

"인연"(감독 이황림, 상영중)은 박중훈 김지호 주연의 로맨틱코미디.

유능한 바람둥이 청년와 결벽증있는 노처녀가 만나 티격태격하다가
결혼하는 과정을 유머러스하고 속도감있게 묘사했다.

이대근 장두이 송병준 유퉁등 개성있는 조연의 연기도 좋지만 무엇보다
박중훈의 코믹연기가 전체 흐름을 주도하는 영화.

사랑은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는 생명체의 자연스런 이끌림에
의한 것이며 그 이끌림(인연)은 필연적이라는 해석이 따스하다.

"죽이는 이야기"(감독 여균동, 98년 1월1일 개봉)는 우리 영화계를
시니컬하게 뒤집어본 영화.

주인공 구이도감독(문성근)은 여관 주변의 남녀라는 세속적인 소재에서
슬프고 아름다운 사랑얘기를 만들어내려 한다.

그러나 그의 의지는 "배우는 무조건 예쁘고 멋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3류배우 말희(황신혜) "내용이야 어떻든 돈만 벌면 된다"는 제작자
(이경영)에 부딪쳐 결국 어처구니없는 결말을 맞는다.

내세울 것이라고는 몸매밖에 없는 3류배우역을 천연덕스럽게 해내는
황신혜의 연기가 돋보인다.

"체리향기"(1월1일 개봉)는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치솟고 있는 이란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작품.

회교권에서 금기시되고 있는 자살을 소재로 다뤄 이란정부로부터
국제영화제 출품금지조치를 당했다가 97년 칸영화제 폐막 3일전 극적으로
출품돼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자살을 결심한 남자가 차를 타고 먼길을 떠나지만 도중에 만난 세사람
(군인, 신학도, 박제만드는 노인) 때문에 생각을 바꾼다는 얘기를 담고
있다.

자살하려는 이유와 이후 상황 모두 명확하지 않았지만 희망적인 결말은
뚜렷하다.

전혀 배우같지않은 소박한 배우가 나오는 것은 키아로스타미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

"가베"(1월1일 개봉)는 우리나라에는 처음 소개되지만 로카르노, 동경 등
국제영화제를 통해 알려진 이란감독 모센 마크말바프의 작품.

기념엽서처럼 산뜻하고 선명한 색감이 돋보이는 예쁜 영화로 빨강 파랑
주황 연두색이 선명한 원색 카페트를 맑은 시냇물에 넣어 헹구는 대목은
잊기 어려운 아름다운 장면이다.

결혼하지 않은 삼촌때문에 애인이 있어도 시집갈수 없었던 시골처녀
얘기가 동화처럼 애잔하게 펼쳐진다.

"천녀유혼"(1월1일 개봉)은 같은 제목의 영화(왕조현 주연)를 만든
서극감독 기획작.다소 현란하다 싶지만 디즈니 만화영화와 다른 그림이
신선한 느낌을 준다.

지극한 사랑은 다음 세상까지 이어진다는 설정으로 "환생 신드롬" 전파에
한몫 했던 내용.

< 조정애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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