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앞두고 문화예술의 중요성이 한층 부각되고 있다.

그동안 말로만 외쳐오던 문화입국의 꿈이 이제는 과연 실현될수 있을
것인가.

오늘의 난국 타개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동안 개발논리에 밀려 소홀히
취급돼온 정신문화 살리기에 역점을 둬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

정부의 획기적인 문화진흥책이 요구되는 가운데 제15대 대통령 당선자에
대한 박맹호 <민음사 대표>의 바람을 들어봤다.

======================================================================

세계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세기말을 향하여 저마다 숨가쁘게 요동치고
있다.

새 정부는 그 와중에서 세기말의 혼돈을 신세기의 희망으로 연결해야
하는 벅찬 과제를 떠맡고 있다.

더구나 우리 사회는 앞으로 엄청난 변화와 험난한 바람을 피할 수 없는
처지다.

새로 탄생한 정부에게 축하와 기대의 박수를 보내면서 몇가지 고언을
드리고자 한다.

겨울 추위보다 더 매섭게 몰아닥친 최근의 총체적 위기는 어디에서
왔는가.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따지고 보면 국가의 경영철학의 부재, 위기에
대처하는 유연한 사고력의 부재로 귀결될 것이다.

"지식의 입력"이 제대로 되지 못한 상황이 결국 오늘의 난국을 초래한
가장 근본이유다.

이렇게 볼 때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는 독서하는 풍토를
새롭게 조성하는 것이라 할수 있을 것이다.

인류사회에 등장한 이래 책은 그 어느 매체보다 지식의 유통을
활성화하는 가장 유효한 기구로 기능해왔기 때문이다.

한편에서 영상매체의 범람이 활자매체의 쇠락을 가져오리라는 주장이
있긴 하지만 섣부른 단견에 불과하다.

우선 각급 학교에서부터 철저한 독서지도와 필수적인 독서량을
통과하도록 하는 어떤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우리 청소년들에게 있어 독서는 특히 중요하다.

이때 받은 인문학적인 훈련은 자신의 세계관을 형성하는데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입시위주의 파행적 교육 아래에서 우리 앞날은 별 기대할 게 못된다.

고전을 재발굴함은 물론 현대적 사조의 흐름에 우리 청소년이 민감하게
대응케 하는 것은 우리의 미래에 대한 든든한 투자가 될 것이다.

아울러 기초과학 도서에 대한 과감한 지원이 이루어져야겠다.

아직도 과학도서는 출판의 사각지대이다.

작년 통계에 따르면 과학도서는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우울한 소식이다.

과학의 중요성을 어느 때보다도 강조하지만 정작 과학의 대중화는 요원한
실정이다.

세계를 변화시키는 과학자나 과학이론의 탄생도 이러한 사회적 후원과
토대가 마련되어야 겨우 가능한 일이다.

바야흐로 이제 한 국가의 힘은 지력의 총합으로 나타난다.

앞으로 도래하게 될 지력사회의 생존전략으로서 독서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조되어야 한다.

앞서 말한 철학의 부재, 사고력의 부재는 모두 독서력의 결핍에서 기인한
것이다.

나는 최근 벌어지는 일련의 위기가 우리가 활용하기 나름으로는 기회도
될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차가운 영하의 기후보다 더 얼어붙고 위축된 우리의 마음을 달래고
위안하는 방법을 진중한 독서에서 출발하자.

이제 우리의 형편을 냉정히 살피고 기초를 튼튼히 점검하면서 차분히
반성하는 기운을 우리 사회에 불어넣어야 한다.

지금은 남의 머리를 빌리는데 골몰할 것이 아니라 책속에 길이 있다는
평범한 지혜에 귀기울일 때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