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열 <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 >

대부분 사람들은 불행했던 과거를 너무 쉽게 잊는다.

어제가 있어서 오늘이 있고 내일이 존재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망각한 채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소설이 있다.

70년대 말, 전형적인 농촌 마을에서 자라 중학교를 졸업하고 열여섯살에
고향을 떠나 상경한 한 순진무구한 소녀의 눈에 비친 그 시대 우리모두의
삶의 모습과 노동현실, 그리고 정치 경제상황을 잔잔한 톤으로,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아주 웅변적으로 회상케 해주는 소설 "외딴방".

작품의 주요 내용은 당시 어려웠던 시절, 우리의 누나 언니 동생들이
흔히 그러했듯이 시골의 한 소녀가 상경해 직업훈련원을 거쳐 서울 구로공단
의 한 공장에 취업, 낮에는 산업현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산업체특별학급에
다니면서 어려운 생활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내면적 성숙을 다져가면서
소설가로서의 꿈을 성취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서른일곱개의 작은 단칸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가리봉동의 소위 벌집
이라는 "외딴방"에서 오빠들과 함께 비좁게 살아가면서 시대상황과 동시대를
살아간 인물들의 소박한 꿈, 삶의 애환을 아주 현실감있게 그려 독자들에게
어쩔 수 없이 지내왔던 당시를 회상케 하고, 또 오늘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나라의 고도 경제성장을 이끌면서 수출산업의 산실이었던 구로공단은
이제 경제적 성지로서 추억과 낭만성을 간직한 채 새로운 첨단 신기술 지식
산업단지로 변모해가고 있다.

노동집약적 산업이 주종을 이루었던 기업환경, 그리고 당시 근로자들의
생활터전이자 "외딴방"의 주요 배경이 되었던 벌집촌도 변해가는 세태에
밀려 쇠락과 소멸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외딴방"은 오늘날 풍요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어려웠던 그 시절을 되짚어 보게함으로써 현재를 돌아보는 자성의 기회를
만들어준다.

또 한편으로는 나이 어린 한 소녀가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고난과 역경을 이기고 꿈을 성취해가는 과정을 보면서 동시대를 살아왔고,
유사한 사례들을 숱하게 목격해왔던 한 사람으로서 "아!그랬었지"하는
아릿한, 그러나 향수어린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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