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사랑과 허무주의로 각색된 미국 느와르 "덴버", 산업스파이와
컴퓨터를 소재로 CF화면에 가까운 감각적 영상을 펼친 홍콩누아르
"신투첩영".

범죄로 얼룩진 암흑세계와 피비린내 나는 액션을 다룬다는 필름 느와르
(Film Noire)"의 전형에서는 벗어나지만 그래서 더 매력있는 영화 2편이
29일 동시에 개봉된다.

필름 느와르의 주인공들은 거의 예외없이 영웅.암흑세계에 연루돼
있지만 나름대로 정의감이 있고 기량도 타의 추종을 불허해 끝까지
살아남아 최후의 승자가 된다.

그러나 이 2편의 주인공은 그런 전형에서 한참 비껴나 있다.

"덴버"의 주인공은 거친 세계를 떠나 안정을 찾으려 했으나 옛보스에
떠밀려 일을 맡았다가 말도 안되는 실수를 저질러 일을 그르치고 죽는다.

"신투첩영"의 주인공들은 꼭둑각시인형처럼 다른사람의 뜻에 따라
움직인다.

영웅의 활약상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고 싶어하는 관객들은 실망하겠지만
틀에 박힌 정통액션에 싫증난 사람에게는 흥미있는 캐릭터다.

"덴버" (원제 Things to do in Denver when you"re dead)는
선댄스영화제를 통해 유명해진 게리 플레더가 감독, "콘 에어"의
스코트 로젠버그가 각본을 맡았다.

"대부3"의 앤디 가르시아가 비디오유언 회사를 운영하면서 오랜 꿈인
선상파티용 요트 구입비를 모으는 전직 갱 지미, "여인의 향기"의
가브리엘 앤워가 지미의 연인으로 등장한다.

"디어 헌터"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탄 크리스토퍼 워켄, "콘 에어"의
식인광 스티브 부세미가 보스와 조직원으로 나와 무게를 더한다.

이 영화의 포인트는 유언회사가 보여주는 삶에 대한 초연함과
선상파티라는 꿈의 낭만적 성향.

타인의 유언을 녹화해주던 앤디 가르시아는 스스로도 사랑하는 여인에게
자기 모습과 사랑의 말을 남기고 죽고, 영원한 희망이던 선상파티는 결국
꿈으로 끝난다.

전편에 흐르는 나레이션의 담담함이 안정감을 더한다.

"신투첩영" (감독 진덕삼)은 지난 8월 홍콩 개봉당시 "맨 인 블랙"을
누르고 1위를 차지한 흥행작.

우리나라 CF에도 모습을 드러낸 금성무 (맥스웰커피) 양채니 (한일합섬
"앙띰")와 떠오르는 신인 진소춘 주연.

자동차와 모터보트 추격전 수중격투 패러글라이딩 장면 등 경쾌한 액션이
할리우드 액션을 연상시킨다.

산업스파이 정보국 컴퓨터해커가 주요 모티브를 이루고 유혈장면이 전혀
없는 것도 특색.

산업스파이인 금성무와 진소춘은 해외프로젝트를 마치고 귀국하다가
홍콩정보국에 체포된뒤 위조지폐 원판을 찾으라는 임무를 강제로
부여받는다.

우여곡절 끝에 임무를 완수하지만 명령자가 물건과 함께 종적을 감추고
동료 양채니가 정보국 첩자로 드러나자 상황이 혼미해지고 이들은
신분보호도 받을수 없게 된다.

경쾌한 분위기에 맞게 끝은 해피엔딩이고 화면은 빠르게 전개된다.

머리좋고 무술과 기기조작에도 만능인 주인공들이 덫에 빠져 허우적대는
모습이 사랑스럽게 그려졌다.

< 조정애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