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월 (The Wall)" (감독 낸시 사보카)은 여성들의 낙태사례 보고서
같은 영화다.

데미 무어와 셰어,그리고 시시 스파이섹등 미국의 쟁쟁한 여배우들이
출연해 미국의 시대별 낙태사례를 제시한 작품.

심각한 상황과 사실적인 묘사는 관객들에게 세상이 바뀌어도 여전한 이
문제를 한번쯤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제시된 시대배경은 52년 74년 96년.

52년 사례의 주인공은 데미 무어.

결혼 1년만에 남편을 잃은 그녀는 실수로 시동생과 관계한 뒤 임신한 뒤
유산을 결심한다.

가난한데다 죄책감때문에 주변에 알리지도 못한 그녀는 무허가업자에게
시술받다가 죽는다.

22년이 지난 뒤인 74년.

네 아이의 엄마이자 대학원생인 시시 스파이섹은 논문 통과를 앞두고
임신사실을 알자 낳을까 말까로 고민한다.

성취감과 집안사정 사이에서 갈등하던 그녀가 택한 결론은 아기를
낳는 것.

세번째는 또다시 22년이 지난 96년의 여대생.

유부남 교수와의 사랑이 깨진 뒤 아이문제로 고심하다가 낙태를 결심한다.

50년대 데미 무어와 달리 그는 따뜻한 배려아래 위생적인 시설에서
시술받지만 그를 수술한 의사(셰어)는 수술 직후 낙태반대론자의 총에
맞아 죽는다.

피치못할 상황에도 불구하고 죄책감에 시달리며 비위생적인 시술 끝에
죽어가는 50년대 여성, 성취감과 집안문제 사이에 고심하는 70년대 여성,
문제가 양성화된 만큼 좋은 시설에서 낙태할 권리는 얻었으나 반대론자의
거센 반발이라는 또다른 벽에 부딪친 90년대 여성은 각 시대상을 잘
드러낸다.

여성감독이 만들었기 때문인지 어쩔수 없는 상황에서의 낙태를 옹호하는
듯하지만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하는 여성은 아기를 낳고 혼외정사로 생긴
아기는 낙태하는 사례는 "낙태는 부정한 여자들의 전유물"이라는
고정관념을 굳히는 듯하다.

이 영화를 보며 떠오른 생각 한가지.

"우리나라에서 이런 영화를 만든다면 남아선호로 인한 기혼여성의
낙태가 빠지지 않을 것이다".

8일 피카디리극장 개봉.

< 조정애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