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세종문화회관에서는 미국 미시간 음대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돌아온 첼리스트 여미혜가 피아니스트 김수지의 협연으로 독주회를 가졌다.

이번 연주회는 레퍼토리가 고도의 기교와 표현력을 요구하는 브람스
힌데미트 라오마니노프의 소나타들이어서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여미혜는 브람스의 소나타 F장조에서는 선이 굵고도 스케일이 크게
격정적인 악상을 집요하게 나타내면서 첼로 음악의 본질을 보여주었다.

20세기 프랑스 여류작가 사강은 "브람스를 좋아하십니까"란 소설을
썼는데 이 작곡가의 교향곡보다 이 실내악곡을 더높이 샀어야 했다고
느껴질 만큼 브람스의 에스프리를 고스란히 우리 청중의 가슴에 안겨주는
듯한 영적인 연주를 들려주었다.

힌데미트의 소나타에서는 브람스의 색채와는 달리 현대음악으로서의
지적인 요소를 충분히 나타냈다.

독일의 저명한 평론가 칼 배르너의 말처럼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중용의 드높은 경지에서 세 악장의 성격을 오묘하게 대비시키면서
연주했는데 피아노가 호흡을 잘 맞추어서 더욱 좋은 효과를 냈다.

더구나 마지막 악장인 파사칼리아에서 첼로의 묘미를 사무치게 느끼게
했다.

라호마니노프의 소나타 G단조에서는 브람스나 힌데미트와 달리 미학에서
가장 귀중한 감정이입, 즉 논리가 아닌 감정을 불어넣어 작품을 해석한다는
방법을 아주 효과적으로 잘 나타냈다.

그리고 라호마니노프의 개성인 페시미즘 (염세주의) 같은 성격을 드러낼
만큼 네 악장의 멜랑콜리한 악상을 전개했다.

더구나 이 소나타에서는 피아노와의 앙상블을 이루면서 디오니소스
형다운 열정을 쏟았다.

피아니스트 김수지가 함축성이 풍부한 첼리스트 여미혜의 음색과 음질에
어울리는 밀도가 짙은 톤으로 협연을 했기 때문에 더욱 좋은 효과를 냈다.

첼리스트 여미혜는 지적인 아폴론 형과 정적인 디오니소스 형을 아울러
갖추고 있다는 것을 이 귀국 독주회에서 보여 주었다.

다시 말하면 논리와 감정을 조화시키는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나타냈는데 여성이면서도 남성 못지않은 강렬한 의지로 음악을 창조하는
것이 더욱 인상적이었다.

김원구 < 음악평론가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