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팝아트의 거장 로이 리히텐시타인 (Roy Richtenstein)이 73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그는 앤디 워홀만큼 출중한 쇼맨십을 보여주거나 떠들썩한 일화를
남긴바도 없지만 이지적이고 깔끔한 외모에 걸맞게 비교적 모범생 같은
인상을 남긴 팝아트 작가다.

하지만 현대미술의 개념적 대전환을 이룬 팝아트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리히텐시타인이다.

그는 1924년에 태어나 오하이오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그래픽과 제도
등의 일을 하다가 50년대말부터 팝아트 운동에 가담했다.

62년 레오 카스텔리에 의해 발탁돼 만화 이미지의 그림들로 개인전을
가진 바 있다.

그 개인전을 통해 호평보다는 혹평을 더 많이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종래 보지 못했던 세속적인 이미지들로 홍수를 이룬
장면이 거부감을 주는 것은 당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멀지 않아 전위적 성취가 인정되어 그의 이름과 작품의 독특한
캐릭터는 전세계 미술 교과서에 선명하게 새겨진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그는 만화 이미지를 소재로 한 그림을 그렸다.

그가 만화소재의 그림을 그리게된 일화가 있다.

그는 50년대만 하더라도 카우보이 등을 입체화풍으로 그렸던 무명
작가였다.

어느날 어린 아들이 자신의 그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을 보고
미키마우스를 크게 확대해 그려 주었던게 동기였다.

그의 만화 이미지는 만화 자체를 그린 것이 결코 아니다.

즉 만화의 내용이 중시되기보다는 만화가 주는 인쇄물로서의 이미지가
중시된 것이다.

대중에게 익숙한 이미지를 매개로 현대사회의 새로운 "풍경"을 그린
것이 바로 팝아트의 모토이기 때문이다.

그의 만화 이미지는 앤디 워홀의 반복적인 마릴린 먼로 이미지나
코카콜라병 이미지와도 서로 맥락을 같이한다.

앤디 워홀의 이미지가 TV나 신문을 통해 반복적으로 접근되는 것들이라면
리히텐시타인의 것은 언제나 대중들이 가까이서 경험하는 통속적인 만화
출판물들의 이미지, 그것도 망점 투성이의 것들이다.

이 두 작가의 이미지는 결국 제우스나 아프로디테 등 고대 신화가 이제
대중적 우상이나 그 대리물로 대체돼가는 사회현상과 미적 현상의 흐름을
눈썰미있게 간파한 결과이다.

특히 리히텐시타인의 작품은 작은 만화 이미지를 크게 확대했기 때문에
망점들이 큰 점들의 구성으로, 윤곽선이 큰 줄기의 면구성으로 전환되는
장면들이 목격된다.

확대되면 확대될수록 작품은 점점 추상적인 장면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렇듯 그의 화면은 이전의 회화들과는 다른 경험으로 그림의 상상력을
경신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평가를 받는다.

그의 작품이 또 한가지 시사하는 점은 예술이 주었던 감동을 이제 다른
영역에서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실보다 재미없는 소설을 지적하듯 그는 만화보다 감동이 없는 미술을
꼬집었다.

< 선화랑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