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한 가을하늘이 눈부신 9월의 마지막날 오후.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자라섬은 55년이란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1942년
8월로 가 있었다.

KBS2TV가 11일부터 방영할 "아씨" (토.일 오후 9시)의 야외촬영 현장.

김재현PD가 경기도 일대를 샅샅이 뒤져 찾아낸 장소다.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는 앞으로 북한강이 흐른다.

무엇보다 전기줄이 없어서 시대를 표현하는데 제격이라고.

"가마꾼들 제자리걸음, 자연스럽게 앞으로"

이날 촬영분은 3회 엔딩신으로 혼례를 치른 아씨 (이응경)가 옥계에 있는
친정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석천 시댁으로 가는 장면.

청사초롱을 든 초동 2명과 조랑말을 탄 신랑이 앞서고 그뒤를 가마꾼과
문중사람들이 따른다.

가마옆엔 아씨의 몸종 간난이 (곽진영)가 가벼운 발걸음을 옮긴다.

말을 탄 신랑 (선우재덕)은 싱글벙글이지만 가마꾼들은 힘든 표정이
역력하다.

제작진은 "아씨" 촬영을 위해 2개의 나루터를 오픈세트로 제작했다.

자라섬쪽 석천나루터는 주변 장터를 포함해 완전한 모양새를 갖췄으나
건너편 옥계나루터는 강물이 불어 자꾸 잠기는 바람에 3번째 보수중이었다.

석천나루터에 나부끼는 일장기, 일본군초소, 모병포스터 등이
일제시대임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작가 이철향씨는 "작품의 시작배경이 1910년대후반에서 1940년대초로
바뀐 만큼 중심축은 유지하되 구체적인 내용은 시대에 맞게 다양화될 것"
이라고 설명.

70년대초 TBC에서 방영된 원작 "아씨" (연출 고성원)가 인고의 미덕을
따르는 전통적인 한국 여인상을 그렸다면 리메이크될 "아씨"는 격동의
시대를 보다 적극적으로 살아온 현대의 어머니상을 부각시킨다.

원작에 대한 추억이 남다른 사람은 아무래도 직접 출연했던 김세원과
여운계.

당시 말썽피우는 남편 긍재와 아씨의 몸종 간난이를 맡았던 두 사람이
이번엔 아씨의 시아버지와 시할머니역을 맡아 세월의 흐름을 전한다.

"긍재역을 하면서 얼마나 욕을 먹었는지 모릅니다.

자동차유리가 성할 날이 없었죠.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이 저런 놈은
혼내야 한다며 매주 촬영장으로 50~60명씩 몰려왔으니까요.

이번엔 재덕이가 욕을 얼마나 많이 먹느냐가 관건이죠"

< 박성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