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읽고 깊게 체험하고 혼신을 다해 써라. 좋은 소설은 다독과 치열한
삶과 깊이있는 사색에서 나온다"

"꼭 일기를 써라. 날마다의 삶을 차곡차곡 챙기는 것이 가장 훌륭한
문학의 자양분이다"

원로작가 이호철(65)씨가 문학지망생들을 위한 창작론 "이호철의
소설창작 강의" (정우사)를 내놨다.

이 책은 이론이나 문법보다 실제 글쓰기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자신의 작품과 잇대어 꼼꼼히 설명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작가의 대표단편 "탈향" "나상"에 얽힌 창작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면서
중요한 대목마다 초고와 비교하기도 한다.

17년간 중앙문화센터에서 강의한 내용을 제자들이 정리해 표현도 구어체
그대로 담겼다.

"독서량이 얼마만하냐에 따라 그 작가의 인생을 이해하는 폭과 깊이가
정해집니다.

그러니까 우선 죽어라 하고 많이 읽으세요.

읽되 열의를 가지고 씹듯이 읽어야죠"

"늘 메모하고 일기를 쓰세요.

남하고 같이 있으면서도 저사람 웃잇빠디 (윗니)는 어떻게 생겼고
눈동자는 어떻고....

"부활"의 카츄사가 약간 사팔뜨기 아닙니까.

본대로 느낀대로 기록하는 습관을 기르세요"

이씨는 자신의 대표장편 "소시민"이 월남직후 18세때 피난지인 부산
부두의 국수공장에서 일하던 시절의 일기에서 건진 작품이라며 "13년뒤에
그 일기를 뒤져보니까 희미한 연필로 쓴 당시의 사건과 분위기가 필름처럼
되살아나더라"고 회고했다.

그가 몇번이고 강조하는 것은 "진정한 작품엔 영혼이 담겨 있다"는 명제.

그래서 틈날 때마다 "자기의 삶이 투영된 진실된 글쓰기가 중요하다.

현시욕이나 치장에 유혹당하지 말라.생동감있게 묘사하고 군더더기는
과감히 버려라..."하고 일깨운다.

"소설이란 허구, 곧 거짓말이죠. 그런데 같은 거짓말이라도 작가의
내부에서 일정기간 발효를 거쳐 숙성된 뒤 영혼의 끝머리까지 이르러
혈육화되고 거기서 뽑혀 올라오는 것이므로 시정의 현실보다 훨씬 더
진짜배기를 담게 되는 거죠"

그는 요즘 신인들이 너무 쉽게 쓴다고 질타한다.

"혼신으로 대어드는 예술가적 자세가 많이 바래지고 가벼워졌다"며
"혼이 담기지 않은 글은 낙서와 다를게 있느냐"고 나무란다.

"젊은이들이 전자매체와 영상문화때문인지 너무 야해지고 얇아져서
삶 자체가 부박해져 가지만, 그래도 좋은 예술가와 작품은 영혼에 닿는
에스프리의 울림에서 나오고 감동도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원고지 55장짜리 단편 "나상"을 쓸 때 1천장이 넘는 파지를 내며
달려들었던 일을 떠올리며 그는 "가장 힘들었고 궁했던 시기에 나온 이
작품에 제일 애착이 간다"고 털어놨다.

작가적 재능에 대해서는 "고골리는 어릴때 같은 반 아이들이나 선생님의
별명을 짓는데 탁월한 실력을 발휘했는데 이는 곧 개인의 특색을 칼로
오려내듯 표현할줄 아는 소설적 재능"이라고 얘기했다.

< 고두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