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청부 < 증권감독원장 >

30여년전인 1969년 가을부터 6개월간 이탈리아에서 연수를 받은적이
있는데 이때 로마 피사 나폴리 등의 유명한 조각과 그림들을 직접 볼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유명한 작품들을 감상했다기보다 증명사진을 찍었다는
것에 만족하는 아마추어 수준이어서 그 유명한 그림들을 볼때도 그저
"색과 풍경이 참 아름답구나!" "저게 사람의 솜씨일까?"하는 정도의
느낌을 가질 뿐이었다.

그 후 나는 시간나는대로 이 분야에 대한 좀더 높은 수준의 감상안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최근 "서영화 읽는법" (조용진 저 사계절 1997)을 읽게 되었는데 이 책이
나의 이러한 욕구를 상당부분 충족시켜 주었다.

이 책은 르네상스 이후부터 1910년대의 세잔 이전까지 500~600년간의
서양화에 대해 "어떻게 볼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를
잘 가르쳐 주고있다.

세잔이후 현대 서양화가 "보면서 느끼는" 그림이라면 이 시대의
서양화는 대부분 "생각하면서 보는" 그림이라는 설명이다.

따라서 이 시대의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작가의
제작 의도, 즉 그림의 "양식" 보다는 그 속에 담긴 "의미"를 파악한 다음에
그 의도가 적절하게 구현되었는지를 느끼고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구경이다.

대단히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그러기 위해서 전문가가 아닌 일반 교양인은 먼저 서양문화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그리스 로마신화와 성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그속의
상징체계를 알아야 할것이다.

미의 여신인 비너스와 제우스의 부인 헤라에 관한 신화를 잘 알아야
그 유명한 렘브란트의 "파리스의 사과"를 제대로 읽을 수 있으며 그 많은
성화의 주요 소재인 "수태고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성서에 대한 지식이
상당부분 필요하다고 하겠다.

취미삼아 하는 일이라도 그림 한 편, 글씨 한점의 배경과 의미를 알고
나서 보면 그때 느낌은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어느 미술학자의 말처럼 미술에 대한 안목을 갖추기 위해서는 "아는 만큼
느낄 것이며 느낀 만큼 보일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미술에 관심이 있는 일반 교양인의 심미안을
넓혀주는데 크게 도움이 될것으로 생각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