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감독 두기봉)는 또 한편의 왕가위식 한국영화다.

"홀리데이 인 서울" "비트"와 다른 점은 감독과 배우가 아예 홍콩
사람이라는 것.

성원그룹 계열의 "아세아 네트워크"가 홍콩의 두기봉 ("천장지구"
연출자) 프로덕션에 시나리오 (김성호)와 제작비를 준 뒤 우리 관객이
좋아하는 홍콩배우 (금성무 이약동)를 기용해 만들도록 한 한.홍콩 합작
영화다.

"홍콩영화의 인기를 감안할 때 완제품을 들여오는 것보다 우리 영화사가
제작하는 쪽이 경제적으로 이득"이라는 게 제작사의 설명.

그러나 이처럼 의욕적인 과정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별로 빛을 발하지
못했다.

가장 큰 문제는 배경과 인물 설정의 구태의연함.

킬러나 도박꾼 등 암흑가 인물은 왕가위를 비롯한 많은 홍콩 영화
감독들이 즐겨 사용한 소재다.

도박꾼겸 전문킬러인 아무 (금성무)와 감옥에서 막 나온 여자범죄자
카문 (이약동)은 살인청부 일때문에 만난다.

가족도 뿌리도 없는 이들은 어느덧 사랑에 빠지고 아무는 카문을 대신해
죽음의 위험까지 무릅쓰게 된다.

살아난 두사람은 각기 이상향인 캘리포니아로 떠난다.

미래가 없는 찰나적 삶은 빼어난 영상미와 만날 때 아름답게 묘사될 수
있지만 스토리가 명확하지 않거나 영상이 받쳐주지 않을 땐 의미를
상실한다.

안타깝게도 이 영화는 후자로 보인다.

관객을 눈물 흘리게 만드는 천장지구 시리즈 (두기봉 작품)의 애절함과,
왕가위식의 세련된 화면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한다.

유일한 한국인배우 변우민의 무게잡는 연기와 어색한 중국어 발성은
비정한 중간보스 역을 우습게 만들어 버렸다.

배신한 태국인을 죽이라는 명령을 저버리고 떠나면서 탄 비행기가
타이항공 (로고를 크게 비췄다) 소속이라는 것 등 재치있는 복선을 즐기는
맛은 있다.

30일 명보극장 개봉.

< 조정애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