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한 주제의식과 실험성이 돋보이는 한국영화 2편이 안방극장의 문을
두드린다.

구성주 감독의 "그는 나에게 지타를 아느냐고 물었다"와 양윤호 감독의
"유리"가 그것.

이 두 작품은 각각 하일지의 동명소설과 박상륭의 소설 "죽음의 한 연구"를
영화화했고 재능있는 신인감독의 야심찬 데뷔작이란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또 패기가 드러나는 일부장면과 대사가 공륜의 잣대에 어긋나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고만고만한 트렌디코미디나 깡패영화에 식상한 안방의 한국영화팬들이
탐구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수작들. "그는."은 죽음을 앞둔 한 남자의
비극적이고 운명적인 사랑을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는 독창적인 기법으로
그려낸다.

주인공 수(김갑수)는 첫사랑(이응경)을 형에게 뺏긴 후 미국유학을
떠나 공학박사로 성공한다.

그러나 재생불량성 빈혈이라는 불치병선고를 받고 요양을 위해 제주도에
온다.

신비로운 젊은 여자 난희(양정지)를 만난 수.

그녀의 숨겨둔 아기까지 받아들이며 사랑을 나누나 행복한 시간은 잠깐.

아기가 죽으면서 난희는 절망에 빠지고 수는 그녀가 조카(김정현)의
애인임을 알게 된다.

감독은 영화의 핵심인 인간의 아이러니컬한 운명을 느릿한 영상리듬과
섬세한 묘사로 표현한다.

"유리".

동국대 연극영화과 동기인 감독 양윤호와 배우 박신양의 열정이 묻어나는
가작이다.

33세의 청년 수도승 유리는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풀기 위해
건조한 불모지인 관념의 유토피아 "유리"로 간다.

교만으로 가득찬 존자승, 편견으로 뒤틀린 애꾸승을 무자비하게 살해하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여자를 안아보는 유리.

유리의 수행은 점차 타락하고 부패한 땅 "읍내"로 이어진다.

화두를 풀기위한 유리의 거침없는 수행은 계속되나 끝내 살인의 죄목으로
사형집행을 받기에 이른다.

난해하고 관념적인 영화.

영화의 반 이상을 벌거벗고 나오는 박신양의 열연이 주제의 부담감을
다소 덜어낸다.

< 송태형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