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현대미술 중심의 개인 컬렉션에 있어 가장 모험적인 경우를
꼽으라면 "판자 디 비우모 (백작) 컬렉션"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컬렉터들이 매입하기를 꺼렸던 동시대의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작품들을 무모할 정도로 사들인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불과 20년 후 굴지의 미술관들이 그의 컬렉션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을 보고 선견지명이 있는 컬렉션의 한 신화로 통하기도 한다.

86년 개장된 LA카운티 미술관 (MOCA)의 로버트 앤더슨관 (20세기 작품
전용관) 개장시 소장작의 상당량이 판자 컬렉션 기증품에 의존했던 사실은
너무나 유명하다.

1950년대 이후의 미국 현대미술 작품에 관한한 세계 최대의 수집가로
손꼽히는 주세페 판자의 컬렉션은 무려 6백점이 넘는 것으로 현대미술사에서
들어 본 웬만한 미국작가라면 거의 빠짐 없이 망라된 매머드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질과 양에도 불구하고 컬렉션의 거점이 뉴욕같은
중심지가 아닌 이탈리아 북부의 자그마한 도시 바레세라는 곳에 있어
그 명성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80년대부터 그의 소장품들이 세계 각처에 새로 설립되는 미술관에
임대되거나 기증되면서부터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컬렉션의 거점은 밀라노 북쪽의 작은 도시 바레세의 비우모에 위치한
판자의 저택이다.

18세기 귀족의 호화저택 정도로 보이는 빌라에 상상을 초월하는 작품들이
소장돼 있는 것을 두고 밀튼 젠델은 "판자 백작의 빌라를 보기 전에는
컬렉팅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까지 말하기도 하였다.

이 저택과 소장품들의 소유자인 주세페 판자는 이지적이고 깔끔한 용모와
귀족적 기품의 소유자로 대학에서 법률을 전공한 사람이다.

본인이 펼친 여러가지 사업도 성공적이었지만 부친으로부터 상당한
상속을 받기도 하였다.

상속을 받은 1956년부터 그는 본격적인 컬렉션에 착수하게 된다.

처음에는 주로 파리에 들러 한참 이름을 떨치고 있던 포트리에나
타피에스, 프란츠 클라인 같은 화가들의 작품들을 수집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1958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의 그룹전들과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로드코의 작품들에 끌리면서 거래선을 미국으로 바꾸기 시작하였다.

59년 쓰레기 잡동사니 같은 라우센버그의 작품들을 11점이나 매입할 때나,
60년대 초 앤디 워홀, 리히텐슈타인 등의 작품에 손을 댈 때도 동료들
사이에 반대와 조롱이 적지 않았다.

물론 더러 이에 굴복하고 또 굴복했던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던 것을
여러차례 술회했다.

이러한 그의 모험적이면서도 성공적인 컬렉팅은 사실 신중함과 치밀함의
결과이다.

그는 자신의 눈에 들어오는 작가가 있으면 충분히 연구하고 조사한다.

그리고 몇달씩 평론가나 화랑 관계자등과 충분히 상담을 하고 상담을
하는 중에도 그 작품들을 수시로 살펴본다.

엄청난 컬렉션에 비해 그의 생활 규모는 의외로 검소했다.

그는 진정으로 당대의 작가와 작품세계를 이해한 사람이다.

"내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을 다른사람의 것에서 찾는다"는 그의 말은
이제 컬렉션에 있어 교과서 같은 말이 되었다.

< 선화랑 >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