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초부터 중반까지 한과 설움의 정서로 민족을 한데 묶었던 악극이
재현된다.

극단 춘추(대표 허현호)와 극단 파도소리(대표 강기호)는 "1900년
초기연극 탐구"시리즈를 통해 사라져가는 민족예술의 한 원형을 복원한다.

악극은 일제강점기 일본 유학파 연극인들이 주도하던 신극을 보완하기
위해 등장했다.

계몽과 선전을 목적으로 한 신극의 막과 막 사이에 춤과 노래를 삽입,
막간극을 공연한게 악극의 모태다.

막간극은 주로 "홍도야 울지마라"등 애절한 노래로 구성됐으나 이후
스토리 위주로 전개, 한국적 뮤지컬로 발전했다.

악극은 일제가 들여온 신파극을 견제하는 역할도 담당했다.

"했습미~" "그랬습미~"등의 신파조 어미를 철저히 배격하고 자연스런
발음을 강조한 게 특징.

말끝을 인위적으로 굴려 민족정서 전달을 막으려 했던 일제에 반발함으로써
민족극의 한 전형을 확보코자 한 셈이다.

8~31일 서울 대학로 미리내극장에서 공연될 "봉선화연정"(원제
장명등사랑)은 악극의 이같은 특징을 그대로 드러낼 전망이다.

허현호 극단춘추 대표는 "잊혀져 가는 민족예술을 복원하고 그 정신을
잇자는게 시리즈의 목적"이라며 "가능한한 20세기 중반 공연됐던 모습
그대로 재연키로 했다"고 말했다.

"악극의 산증인"으로 불리는 김태랑(한국연예협회 이사)씨가 직접 출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진규 황해 도금봉 장동휘 전옥씨등 대부분의 악극배우들이 60년을
전후해 영화배우로 전업한 후에도 악극 보존에 주력해온 김씨는 "악극이
대중과 호흡을 같이 했던 시기의 분위기를 다시 한번 조성함으로써 악극
대중화를 실현하겠다"고 다짐했다.

"봉선화연정"은 어머니와 헤어진 딸이 계모 슬하에서 핍박당해 실성상태에
빠졌다가 생모와 오빠를 만나게 된다는 내용의 현대판 "콩쥐팥쥐".

유독 핏줄을 강조하는 한국적 정서와 갖은 고난끝에 행복을 찾게 되는
전통극의 해피엔딩 구조를 그대로 담고 있다.

들려줄 노래는 "꽃마차" "생일없는 소년" "오빠" "모정" "청실홍실"
"불효자는 웁니다"등 6곡.

극단 춘추와 극단 파도소리는 이번 공연이 끝나면 "아리랑" "눈물"
"마지막 심판" "안개낀 목포항"등의 레퍼토리로 지방 순회공연에 나서며
내년 상반기중 서울에서 1~2편의 작품을 더 공연할 예정이다.

빠른 전개와 현란한 몸짓의 현대극 부상으로 60년대에 명이 끊긴 악극이
90년대말 관객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지 주목된다.

745-8535

< 박준동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