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로 신장이식 수술에 성공한 혈관외과학계의 태두 이용각(73,
전인하대 의무부 총장)박사가 의학자서전 "갑자생 의사"(아카데미아)를
펴냈다.

이 책에는 가난한 식민지에서 태어나 세계적 명성을 쌓은 한 의학도의
인생여정이 격동의 한국현대사와 함께 펼쳐져 있다.

일제때 군의관으로 징집돼 만주로 끌려갔던 그는 해방후 소련군과
중공군의 포로로 전전하다 미국무성 장학생으로 뽑혀 유학가기 3일전 6.25가
터지는 바람에 또다시 종군의사로 포연속을 누빈 "기구한 갑자생" 의사다.

45년 경성의학전문학교(서울대의대 전신)를 졸업한 그는 전쟁중
미해병대를 따라 장진호전투에 참가했다가 문산 외과이동병원에서 동맥
이식수술 현장을 목격했다.

존스 홉킨스대학 외과수련의였던 스펜서씨가 전사자의 동맥을 냉장고에
저장했다가 팔다리 동맥을 다친 부상자들에게 이식하는 장면을 "운 좋게"
지켜본 것.

"이때의 경험이 국내 혈관외과분야를 개척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이
됐습니다.

한국전쟁의 긍정적인 면중 하나가 의학발전이었죠"

정전협정이 마무리단계에 들어서던 53년 그는 텍사스 메디컬센터로 유학,
유명한 심장혈관외과 의사 드베이키교수를 만난다.

58년 귀국한 뒤에는 이화여대의대 교수와 강릉도립병원장을 거쳐 가톨릭
의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69년 명동 성모병원에서 한국최초의 신장이식
수술에 성공했다.

"환자는 말기 신부전증으로 실신상태가 돼 미국에서 김포공항에 이송된
30대초반 남자였어요.

"의사생명을 걸고 병원문까지 닫을 각오로" 수술에 들어갔죠.

환자 어머니의 콩팥을 떼어 18분만에 이식을 마쳤습니다"

언론은 1면톱으로 대서특필했고, 3개월 뒤 환자는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이 무렵 그는 대한이식학회를 창설했고, 83년에는 대한혈관외과학회(83년)
를 만들어 그간의 연구성과를 한데 모으는데 노력했다.

"개인적으로는 신장이식의 최초 성공보다 학회 창설에 더 보람을 느낍니다.

두 학회 모두 국제학술대회를 여러차례 개최하는 등 우리나라 의학발전의
지렛대 역할을 했어요.

동료들과의 학회활동이 가장 큰 정신적 재산입니다"

그의 취미는 주머니칼 수집.

아무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개복수술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경험이 그를
주머니칼 수집광으로 만들었다.

인술에 대한 믿음을 한시도 잊지 않는다는 그는 "궁핍한 시대에 한 의사가
걸어온 길을 거울삼아 우리 젊은이들이 꿈을 키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두현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