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는 건달과 여관이 쥐고 흔든다(?).

이런 엉뚱한 표현이 이상하지 않을 만큼 요즘 우리 영화는 깡패와
폭력배 및 여관시리즈로 도배돼 있다.

상반기 한국영화중 최고 히트작은 5월 개봉된 "비트" (우노필름 김성수
감독).

"현란한 영상미"로 찬탄을 자아내며 관객 70만명을 돌파한 이 작품은
꿈을 갖지 못한 젊은이들이 폭력에서 돌파구를 찾는 것으로 설정돼 있다.

6월에 나온 "파트너" (글로벌필름 설춘환 감독)와 "삼인조" (씨네2000
박찬욱 감독) 역시 남자건달 2명과 여자1명이 짝을 이뤄 엉겁결에 갖가지
범죄를 저지르고 도피하는 내용을 담았다.

26일 개봉되는 "넘버3" (프리시네마 송능한 감독)는 조직폭력배와 그들
주변을 다룬 블랙코미디.

8월초 관객을 만나는 "나쁜 영화" (미라신코리아 장선우 감독) 또한
불량청소년과 행려병자들의 세계를 다큐멘터리처럼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제목에서부터 여관을 내세운 작품도 많다.

4월에는 한 호텔에 오고 가는 2쌍의 남녀를 그린 "홀리데이 인 서울"
(시네마서비스 김의석 감독)이 개봉됐고, 여관을 배경으로 한 "마리아와
여인숙" (선익필름 선우완 감독)과 "모텔 선인장" (우노필름 박기용
감독)이 제작중이다.

불과 몇개월 사이 이처럼 특정소재 영화가 늘어난 것은 그 유해여부는
차치하고라도 다양한 상상력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우려를 자아낸다.

일부에서는 최근 청소년들의 폭력및 비행사례와 연결지어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폭력영화 감상=범죄유발"이라는 등식을 내세우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논리라고 얘기한다 (영화평론가 양윤모씨).

이들 영화가 폭력을 찬양하는 것도 아니고 개중에는 수작도 적지 않다는
것.

"비트"는 왕가위식 화면을 따른 것이 사실이지만 그에 못지 않은 뛰어난
영상으로 찬사를 받았다.

"넘버3"는 3류 건달들의 세계를 블랙코미디 수법으로 비꼬고 있다.

"나쁜 영화"또한 지나치게 파격적인 소재라는 문제는 있지만 다큐멘터리에
버금가는 진지한 접근법으로 거리 부랑아의 세계를 조망하고 있다.

여관 시리즈쪽은 사정이 약간 다르다.

"홀리데이 인 서울"은 왕가위식 모방문제로 곤욕을 치루고 흥행에서도
참패했으며 "마리아..."와 "모텔..."은 아직 결과가 미지수.

결국 문제는 소재 빈곤에 허덕일 수밖에 없는 영화계 현실에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있게 들린다.

"그는 나에게 지타를 아느냐고 물었다" (한씨네텍 구성주 감독)의
대통령관련 농담을 삭제하고 동성애 소재의 홍콩영화 "부에노스 아이레스"
(왕가위 감독)에 수입불허판정을 내리는 현실이 건달과 깡패 등 밑바닥
인생 영화에 매달리는 결과는 낳고 있다는 것.

"이런 저런 이유로 제약을 받게 되면 가능한 것은 폭력물과 에로물뿐"
이라는 해묵은 푸념이 영화가에서 다시 고개를 드는 것은 결코 반갑지
않은 현상이다.

<조정애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