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정남영씨가 11~27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금산갤러리(735-6317)
에서 네번째 개인전을 열고 있다.

출품작은 "마을"연작 20여점.

85년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뒤 화단의 주목을 받아온
정씨는 순수한 물성의 세계를 독특한 자기언어로 표현해온 작가.

물성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기 위해 밑칠이 안된 소지 캔버스를 사용하고
있는 그는 또 매우 특이한 작품제작 방식으로 눈길을 끈다.

둥글게 발묵된 크고 작은 형상들과 예리하고 율동적인 선들이 어우러져
있는 화면들은 이른바 오토매티즘에 의한 기법으로 제작된 것.

화면의 발묵효과는 캔버스의 앞면을 샌드페이퍼로 갈아내고 송곳으로 선을
긋거나 갈라지게 한 뒤 그위에 물감을 발라 배어나오게 하는 기법을
사용했다.

따라서 정씨의 작품은 기존의 회화처럼 묘사를 주조로 한 조형적인 것이
아니다.

붓으로 그린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그의 작품은 재료의 물리적인 성질에
따라 생겨난 이미지들로 채워진다.

이렇게해서 생겨난 전혀 예기치 못하는 선과 색의 번짐, 자연스럽게
형성된 마티에르 등은 보는 사람에게 새로운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작품속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여러가지 형상들은 궁극적으로 생성과
소멸이라는 불가해한 우주 및 자연형상을 설명하고자 한 것.

또 정태적인 사유의 세계와 서정적인 이미지는 무위자연을 추구하는
동양적인 회화관과도 일맥상통한다.

< 백창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