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끝났다.

미국이 배워야 할 일본은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

일본식 자본주의의 실패는 경제를 시장의 자율에 맡기지 않고 소수 엘리트
관료들의 손아귀에 쥐어준 결과다"

게리 베커, 로버트 커트너, 폴 피고트 등 유명 경제평론가들의 일본관이다.

그들은 60년대 이후 지속적인 성장을 계속한 일본이 20세기말을 정점으로
퇴조하고 있다고 본다.

"적자생존"이라는 정글(시장)의 법칙을 철저하게 준수하지 않은 것이
1차적 원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이러한 미국적 시각에 크게 동요하지 않는 분위기다.

5~6년뒤면 일본이 다시 미국을 추격할 수 있으리라는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5년이상 계속돼온 불황의 끝이 보이고, 금융개혁을 중심으로 한 경제
새틀짜기가 한창 진행중이어서 21세기가 비관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21세기를 준비하는 일본의 움직임을 차근차근 살펴볼 수 있는 책이 나왔다.

일본 마이니치신문 경제부에서 펴낸 "21C 금융대혁명"(김평옥 역, 무한
1만원)과 아사히신문 미국 총국장 후나바시 요이치씨가 쓴 "일본의 세계화
구상-냉전후의 비전을 쓴다"(김응렬.서용석 공역, 일신사 8천원)가 바로 그
책.

두 책은 일본의 현역기자들이 썼다는 것이 공통점.

그러나 "21C 금융대혁명"이 현재 진행중인 금융개혁의 배경과 진행과정을
개괄적으로 분석한 반면 "일본의 세계화구상"은 국제관계에서 일본의 발언권
높이기를 시도하고 있다.

"21C 금융대혁명"은 미국 논객들의 입장에 어느 정도 동조한다.

오쿠라쇼의 실물경제 개입에 반대입장을 분명히 한다.

특히 낙하산인사가 금융의 자율성과 경쟁력 저하의 주범이라고 몰아세운다.

게다가 일본 대장성이 너무나 많은 인.허가권을 쥐고 있어 은행이
독자적인 사업을 구상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런 배경으로 대두한 것이 대장성 해체론.

금융기관의 우두머리를 없애야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지난달 하시모토 일본총리가 밝힌 일본 금융개혁의 틀은 이 책이 지적한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대장성의 축소, 중앙은행의 독립, 빅뱅식 개혁 등.

이렇게 금융개혁에 시동을 건 일본이 21세기초 재도약할 것인가에 대한
이 책의 답변은 "반반"이다.

"일본의 세계화 구상"은 냉전종식후 세계 정세를 다극적 경쟁체제로
바라본다.

미국의 세계경찰론과는 전혀 다른 입장이다.

이런 변화된 세계질서는 일본에 변화를 요구한다.

미국의 안보우산에 의존하고 미국주도의 자유경제 질서에 무임승차했던
일본도 새로운 대외관계를 모색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저자는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적극적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 총리 자문기관
으로 외교심의회를 설치하는 등 23가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그는 이 방안들을 통해 제국주의적 군사대국 일본이라는 이미지를 벗고
세계의 중심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 박준동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