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밀리 레스토랑'으로 27년간 인지된 아웃백 스테이크 하우스(이하 아웃백)가 '캐주얼 다이닝'이라는 콘셉트로 소비자들과 만납니다. 현대 20대 소비자들이 향후 20년간 즐길 수 있는 브랜드가 되겠습니다."정필중 아웃백 직영사업본부장(전무)은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아웃백 광화문D타워점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브랜드 정체성을 재정의하는 리포지셔닝 전략에 대해 소개하고 이같이 밝혔다. 2021년 bhc그룹이 인수한 아웃백은 보다 젊은 소비자의 입맛과 발길을 잡아 성장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아웃백, 20대 공략…안심스테이크 보강하고 카펠리니 파스타 내놨다아웃백은 소비자층을 확대하기 위해 브랜드 정체성을 '캐주얼 다이닝'으로 개편해 주요 소비자 연령대를 20대 잘파세대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파인다이닝에 지갑을 척척 여는 20대를 의식한 조치다. 정필중 본부장은 "아웃백이 지난 27년간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사랑 받는 동안 이용한 주 고객 연령층이 40대 중반으로 올라왔다"며 "가족만 모이는 한정적인 레스토랑에서 벗어나 현대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캐주얼 다이닝'으로 자리잡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아웃백은 ‘우리 라이프스타일 속에 함께하는 외식공간’이라는 새로운 브랜드 지향점을 제시하는 신규 캠페인 ‘러브 페어링'을 운영하고, 이를 뒷받침할 신메뉴 4종을 선보였다. 신메뉴는 소비자 연령대를 넓히기 위해 20대 소비자의 외식 트렌드에 맞춘 점이 특징이라고 소개했다. 우선 스테이크 하우스의 정체성에 맞춘 신상품으로 안심스테이크 부문을 보강한 ‘워커바웃 웰링턴 스
한국 국적 무슬림을 내세운 유튜브 채널 '다우드킴'을 운영하며 구독자 553만명을 모은 유튜버가 후원금 사용 내역이 불투명하다는 의혹에 휩싸였다.다우드킴은 지난 13일 자신의 힘으로 인천에 이슬람 사원을 짓겠다며 토지 계약 서류를 공개해 주목받은 인물이다. 다우드킴은 이슬람 사원 건립을 위해 개인 계좌 번호와 페이팔 아이디를 공유하며 사원 건립에 필요한 비용을 모금했다.다우드킴이 사원 건립을 위해 모금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년 전에도 지자체 반발에 부딪힌 대구 사원 건립과 관련해 자금을 모았고, 당시 자신의 유튜브 채널 커뮤니티 게시판에 "비용은 5만5000달러(한화 약 7600만원)가 넘었지만, 거의 모두 모금됐다"며 "여러분의 도움이 한국 이슬람의 역사를 바꿨다"는 글을 적었다.이후 지난해 11월 11일 '한국에서 이슬람 사원이 설립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Help me to build masjid in Korea!)는 제목의 유튜브 영상을 게재하며 "이전 모금액은 대구 이슬람 사원 건립을 위해 전달됐고, 이 돈은 새로운 이슬람 사원 건립에 사용될 것"이라고 말했다.2021년 대구 북현동에 설립될 것이라 알려졌던 이슬람 사원은 주민들의 반대로 건립이 중단됐다. 이후 2022년 9월, 대법원이 "공사 중지는 위법하다"며 건축주 손을 들어주며 공사가 재개됐지만, 공사 과정에서 스터드 볼트를 누락한 사실이 드러나 또다시 공사 중지 명령이 내려졌다.다우드킴의 대구 사원 건립과 관련한 모금 활동에 대구 경북대로 유학 와서 무슬림 커뮤니티를 운영 중인 한 파키스탄 학생은 JTBC '사건반장'에 "(다우드킴이) 내가 돈을 모금해서 줄 테니 이슬람 사원을 짓자
“날 그린 초상화인데 나랑 하나도 안 닮았잖아요. 이건 도저히 안 되겠네요.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샤넬을 만든 천재 패션 디자이너, 코코 샤넬은 눈앞에 있는 화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육원에서 자란 불행한 어린 시절을 딛고 자수성가한 샤넬. 그녀는 최고의 디자이너가 된 자신의 당찬 모습을 그림으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작품을 그릴 화가로는 자신처럼 자수성가한 여성 화가가 제격이었습니다. 그래서 샤넬은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여성 화가에게 초상화를 의뢰했습니다.하지만 돌아온 결과물은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림 속 샤넬은 실제 샤넬과 닮은 구석이 거의 없었거든요. 인물의 분위기 역시 강력하기보다는 섬세했고, 당차다기보다는 우울했습니다. “돈을 받고 싶으시면 그림을 고쳐주셔야 해요. 아니면 새로 그리던가.” 샤넬은 말했습니다.그 말을 들은 화가의 얼굴은 분노와 수치심으로 빨개졌습니다. 비록 화풍은 부드럽고 섬세했지만, 화가 역시 온통 남자뿐인 미술판에서 실력과 뚝심으로 살아남은 여걸. 작품을 고친다는 건 화가의 자존심에 크나큰 상처를 내는 일이었습니다. “됐어요. 싫으면 마세요.” 도로 그림을 집어 든 화가는 이 말만 남기고 방을 나와 그림을 창고에 처박아 뒀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그림에 관해 물어보면 이렇게 말했습니다. “샤넬, 그 여자가 좋은 사람이긴 하지. 하지만 그림 보는 눈은 없더라. 파리지엔느인 나와 달리 뭘 모르는 ‘촌년’이라 그런가 봐. 그 그림은 다른 사람한테 팔아버리든지 하지 뭐.”세계적인 천재 패션 디자이너 샤넬을 ‘뭘 모르는 촌사람&rsqu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