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한 마리 목줄 늘어뜨리고
졸졸 따라오다 서고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
개같은 날의 아침
버스에서 형편없이 구겨지다 튕겨나와
교정에 들어서면 신록의 아이들 비겨가고
눈부신 봄꽃 한 잎 두 잎 빛 사이로 흩날리는데
한순간 아득한 어지러움에 텅 비어버리는 먼 하늘
소리가 죽고 사물이 정지하고
부러지는 내 빛의 날개
나는 개줄이 길게 늘어져 질질 끌리는 것 같아
자꾸 뒤돌아보며
부질없다, 부질없다를 되뇌며
또 며칠 몇 날 신음해야 하는가
어둠에 들어오면 사라지는 그림자
아무도 모르게 더 큰 구멍 키워
심연으로 내 뒤를 좇을
허무의 덫
내 삶의 블랙홀

시집 "우주로의 초대"에서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