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의 중진 평론가 4명이 우리문학의 위기와 과제를 깊이있게 다룬
글을 나란히 발표해 화제다.

문학평론가 유종호 김병익 백낙청 김윤식씨가 계간 "문학과 사회"
(문학과 지성사) 여름호 특집 "한국문학=걸어온 길, 나아갈 길"에 함께
참여, 90년대 문학의 현황을 분석하고 21세기 문학의 방향을 제시한 것.

이들은 순수와 참여진영의 정신적 지주로서 우리 문학발전의 견이차
역할을 맡아왔다.

"창비"쪽의 대부로 꼽히는 백낙청씨가 "문학과 사회"에 글을 싣기는
처음이어서 더욱 관심을 끈다.

유종호씨는 "20세기의 막바지에서"를 통해 "대하소설을 위시한
장편소설의 대량 생산과 단편으로부터 장편으로의 소설 중심이동은
경제성장에 따른 파급현상"이라며 "상업주의사회 제패와 동시에
소비주의와 쾌락추구 성향이 짙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문학이라는 이름에 값하는 소설과 통속작품을 구별하는 것은
문체인데 최근의 졸속적 대량 생산 작품에는 내구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와함께 "모호하고 영문도 모르는 작품에 대한 아무런 단서나 암시도
제공하지 않은채 모든 게 자명하다는 듯 변죽만 울리는 종류의 해설이
너무 많아 안타깝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시와 산문을 막론하고 무분별하게 퍼져있는 우스개 지향의
글쓰기는 경계해야 한다"며 "개그적 발상이 깊은 슬픔이나 비극적 세계
인식보다 순간적 긴장해소의 방편으로 분해되고 있는 현실은 애석하기
그지없다"고 질타했다.

김병익씨는 "자본.과학 복합체 시대에서의 문학의 운명"에서 "유전자
공학이나 컴퓨터 등 자본과 과학의 결합이 누증적으로 발전하는 사회일수록
문학의 진정성은 더욱 절실하게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워드프로세서에 의한 글쓰기는 육필작업과 다른 문체를 낳게 되고,
통신문학은 가입자들에 의한 쌍방향집필이나 집단 창작을 가능케 하면서
하이퍼문학과 같은 새로운 창작형식을 만들어내고 있다"며 "이럴 경우
독자적인 "창작"과 작가 고유의 "서명"이라는 근대문학의 기초개념이
전복되고 인격권과 재산권을 지닌 저작권의 개념도 크게 흔들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이러한 자본과 과학의 결합체에 대항할수 있는 것은 문학의
진정성을 찾는 길뿐"이라고 역설했다.

백낙청씨는 "비평과 비평가에 관한 단상"에서 "우리는 한국 비평의
"가난"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더불어 자기 이야기를 진솔하고 구체적으로
하는 비평자세를 가져야 한다"며 "비평은 겸허해야 하고 또 전문성에
기초한 권위를 지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문학평론가가 대중문화비평에 함부로 기웃거려서는 안되며,
비평가적 수련이 전제되지 않은 대중문화연구는 "문화중개상"에 그칠
위험이 크다"고 경계했다.

김윤식씨는 "비평의 현장성이란 무엇인가"를 통해 "비평의 출발은
작품에 대한 감동인데 자기의 감동을 타인과 교환하기 위해서는 작품의
감동을 인간과 현실 시대 역사 등 타인과 교감할수 있는 형태로 번안하지
않을수 없다"며 "비평가는 첫인상에 대한 "설명"의 단계를 거쳐 효과적인
"표현"의 단계까지 나아가야 제 몫을 다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고두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