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실명제가 시행된지 4년이 지났지만 당초 의도했던 부정부패 방지와
공평과세 실현이라는 "두마리 토끼"중 어느 것도 붙잡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금융실명제를 실패로 규정짓고 비틀거리는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중앙은행의 독립과 금융제도의 빅뱅식 개혁이 절실하다고 주장한
책이 나왔다.

화제의 책은 김한응(60) 한국금융연수원 부원장이 쓴 "금융실명제와
자유경제" (박영사 1만2천원).

저자는 금융실명제가 실시됐지만 검은돈이나 사금융시장은 전혀
퇴치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금의 원활한 흐름을 왜곡, 경제난을
가중시켰다고 비판했다.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고 그 대가로 사업권이나 각종 이득을 얻어내는
검은 거래가 금융실명제 이후 더욱 늘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한보사태가 대표적인 예지요.

PERC라는 홍콩 컨설팅회사는 한국의 부정부패 정도가 최근 더 심해졌다고
발표했습니다.

금융연구원에서도 금융실명제 이후 사금융시장이 확대되고 있다고
밝혔죠.

그런가하면 거래때마다 실명을 확인케 하는 바람에 거액자금이 장롱속에
묶여 중소기업이 자금난을 겪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는 금융실명제의 또다른 목표인 조세형평 부문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세무공무원들의 비리는 끝이 어딘지 알수 없을 정도며 월급생활자들은
자신들을 "봉"이라 부를 만큼 세제가 불공평하다고 호소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금융실명제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쪽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다고 분석하고 철저한 자유화와 시장기능
(특히 가격기능)의 회복이 경제회생의 유일한 대안이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중앙은행은 무조건 독립돼야 하며 금융개혁은 빅뱅식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화가치와 물가안정은 자유경제의 초석이기 때문에 어느곳의 간섭도
받지 않고 일관성있게 통화신용정책을 펴는 독립 중앙은행의 설립은
필수라는 것.

또 금융제도가 발달된 선진국을 따라잡으려면 단계별 금융개혁보다
대폭발처럼 일시에 시스템을 바꾸는게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이를 위해서는 "모피아"로 불리는 재경원의 근본적 개혁이 선행돼야
한다고.

"재경원은 금융기관의 실질적인 인허가권이나 상품개발권 등을
보유하면서 인사 대출 등 내부경영에 직간접으로 간섭하고 있습니다.

재경원이 없어지지 않는 한 금융개혁은 없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
겁니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 존 F 케네디스쿨에서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은 김부원장은 한국은행 조사제2부장 금융경제연구소장 등을
역임했다.

< 박준동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