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가 없으면 있는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가.

가족과의 대화보다 TV시청이 더 즐거운가.

사랑한다면서 왜 다른 사람을 쫓아다니는가.

현대문명과 인간의 이기심을 비판한 프랑스 코미디영화 2편이 3일
동시에 개봉된다.

꼴린느 세로감독의 "뷰티풀 그린"과 알랭 샤베감독의 "디디에"가
그 작품들.

이 두 영화는 각각 외계인과 개의 눈을 통해 정이 메마른 인간과 형식에
얽매인 세상을 비판한다.

그러나 따가운 질책은 아니다.

외계인의 끊임없는 의문 (뷰티풀 그린)과 사람으로 변한 개의 엉뚱한
행동 (디디에)으로 웃음속에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것.

두 작품 모두 감독이 각본과 주연까지 1인3역을 해냈다.

꼴린느 세로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여성감독.

바람둥이 남자가 아기를 떠맡은 뒤 변화한다는 "세 남자와 아기바구니",
흑인파출부와 사랑에 빠진 회사원의 얘기 "로말드와 줄리엣", 잘 나가던
광고전문가가 갑자기 곤경에 처한다는 "위기" 등 그의 대표작은 모두
"부와 지위를 모두 갖춘 현대인에게 닥친 위기와 그로 인한 변화"를
그리고 있다.

그 결론은 인간성 회복.

"뷰티풀 그린"은 환경문제와 인간성 회복을 동시에 얘기하는 작품.

제목은 맑은 호수에서 수영하고 신선한 야채를 먹으며 풀을 엮은
잠자리에서 자는 요정같은 사람들이 사는 혹성의 이름이다.

이 별의 밀라 (꼴린느 세로)가 사람들을 순화시키고 위안을 주러 지구에
오면서 얘기가 시작된다.

그는 오케스트라 단원에게 랩송을 연주하게 하고 축구장을 무도회장으로
바꾸며 냉정한 의사가족의 마음을 바꾸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약 4분동안 대사없이 계속되는 마지막 장면이 압권.

넓은 초원에서 물구나무서며 뛰놀고 나무에 매달려 열매를 따먹는
뷰티풀 그린의 생활상은 관객의 시선을 붙잡기에 충분하다.

영락없는 거지 차림의 수더분한 아줌마 "밀라"가 감독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즐거움도 크다.

"디디에"는 올 2월 프랑스 개봉 당시 "랜섬"을 비롯한 할리우드
흥행대작을 제치고 1위에 오른 작품.

우리영화 "꼬리치는 남자"와 반대로 개가 사람으로 변한 뒤 벌어지는
갖가지 해프닝을 담았다.

디디에는 주인이 해외출장을 떠난뒤 프로축구단 매니저 쟝 삐에르
코스타 (장 삐에르 바리)에게 맡겨지고 그날밤 바로 사람 (알랭 샤베)으로
변한다.

그는 혀를 내밀고 할딱거리며 사람을 핥고 걸을 때는 손을 가슴에 붙이는
등 개의 속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어느날 공원에서 아이들의 공을 받아 멋지게 패스하는 디디에를 보고
쟝은 그를 축구선수로 출전시키고 디디에는 경기를 승리로 이끈뒤 다시
개로 변한다.

이 작품의 메시지는 "동물처럼 순수한 마음을 회복하면 세상은 더
아름다워질수 있다"는 것.

자기를 발로 차고 함부로 욕하는 주인을 위해 목숨을 던지며 싸우는
디디에의 모습을 보면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배급사 세운미디어는 혀를 내밀고 팔을 가슴에 붙인채 추는 디디에춤을
홍보수단으로 내세우고 3일 피카디리극장앞에서 디디에춤 컨테스트를
연다.

< 조정애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