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평 : 한경서평위원회 선정
저자 : 마루야마 마사오
출판사 : 한길사

지난해 8월15일 타계한 일본의 대표적인 지식인, 정치학자이자 동시에
사상가인 마루야마 마사오의 명저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을 우리말로
읽을수 있게 됐다.

우리 사회에서 많은 베스트셀러를 낳은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그 일본에서 "학계의 댄노오 (천황)"로 불리며 지성계를 리드해온
지식인의 대표작이이제서야 번역됐다는 사실은 실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마치 일본에 대한 관심의 폭과 수준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노벨상을 수상한 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마루야마 선생은 일본의 다양한
전문분야 지식인들에게 공통의 언어를 제공해 주었다"고 했다.

실제로 전후 일본의 지식인치고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한다.

1957년 상.하권으로 나왔다가 증보판 (1964년)을 내면서 한권으로
묶은 이 책은 증보판만으로도 1백50쇄를 돌파했다.

영어로도 번역돼 (1963년, 1963년 증보판) 현대 일본을 이해하는
필독서로 자리잡고 있다.

1940년대 그의 20대후반은 군국주의와 파시즘으로 특징지워지는
그런시대였다.

젊은 학자로서 학문 (일본정치사상사)를 통해서 사상적 저항을 시도하던
그에게 어느날 갑자기 영장이 날아든다.

결혼한지 3개월밖에 안된그는 아내와 나이든 어머님을 남겨두고
평양신병훈련소로 떠나야만 했다.

1945년8월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에 투하됐을때 육군 이등병이었던 그는
거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동경대 정치학과 조교수로 돌아온 그는 일본의 천황제, 그리고 군국주의의
논리와 심리 등에 비판의 칼날을 휘둘러대기 시작했다.

1946년 5월에 발표한 "초국가주의의 논리와 심리"는 당시 지성계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 이후의 화려한 활약상을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 특히 제1부
"현대 일본정치의 정신상황"에서 읽을수 있다.

허나 그것뿐이라면 그의 학문과 사장이 가지는 매력은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의 비판이 갖는 힘과 설득력은 보편적인 통찰력에서
비롯되고 있다.

제2부 "이데올로기의 정치학"이 2차대전 이후의 냉전체제의 구축과
논리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있다면 제3부 "정치적인 것과 그 한계"는
인간과 정치, 권력과 도덕, 지배와 복종과 같은 보편적인 주제를 깊이
탐구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책을 가리켜 "전쟁과 그 이후의 여파가 빚어내는 거센
물결과 성난 파도의 시대에 그 청년시절을 살았던 한 일본인의 지적인
발전의 기록"이라 했다.

현대의 고전 반열에 속하는 그 책을 우리말로 옮긴이는 이미 그의
"정치사상사연구" (통나무, 1995)를 번역, 소개한 적이 있는 김석근
고려대 교수다.

마루야마선생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는 몇 안되는 국내학자중 한사람인
그가 직접 번역한 것이라 원어로 읽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부록으로 덧붙인 "영어판 서문"과 해제 "변혁시대를 산 한 지성인의
양심과 저항" 역시 돋보인다.

자신있게 일독을 권한다.

이재석 < 시립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