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속에 비친 기업인은 어떤 모습일까.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에 기업과 문학의 역할은 무엇이며 경제와
정신문화의 영역의 "접점"은 어디인가.

이같은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자유기업센터,
한국기업문학연구원이 29~30일 경주에서 "한국문학과 경제의식"을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한다.

문학평론가 정현기 (연세대 교수)씨는 발제문 "문학작품 속에 비친
한국 기업인의 모습"을 통해 "조세희씨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등 70년대 소설에는 억압받는 노동자의 반대편에 선 탐욕스런 기업인
이미지가 강조됐지만 80년대중반부터는 경제부흥의 주체로서 전력투구하는
기업인의 모습이 부각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백시종씨의 "걸어다니는 산"과 유순하씨의 "생성", 홍상화씨의
"거품시대" 등을 예로 들면서 이들 작품은 한국기업의 행태를 세태소설에
담아 대중성을 확보하고 경제성장과 관련된 균형적 시각을 반영했다고
평가했다.

부의 획득은 돈뭉치가 천장에서 떨어지기를 바라는 몽상이 아니라
치열한 경쟁을 뚫고 생산적인 결과를 얻어내려는 투쟁의 과정이라며
국내뿐만 아니라 나라밖으로까지 시야를 넓힌 소설들에 주목했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할지라도 "해서는 안되는"
최소한의 상도덕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시키는 대목도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홍상화씨의 "거품시대"는 기업윤리란 공공복지에 어느 정도
기여하느냐에 따라 판별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유순하씨의 "생성"은
물질적 부와 인간적 대우, 기업경쟁과 노동자의 요구 사이에서 고민하는
인물을 부각시키고 있다.

조선소 근로자들의 갈등을 그린 김준성씨의 "먼 시간 속의 실종"도
경영현장의 실상을 잘 드러내고 있다.

정씨는 "기업이미지는 이윤의 효율적 사회환원과 문화재단을 통한
사회기여도의 높낮이에 좌우된다"며 "기업메세나협의회 활동도 보다
실질적이고 폭넓게 이뤄져야 한다"고 얘기했다.

오양호 (인천대 교수)씨는 "욕망의 사회와 돈 모티프의 소설적 굴절-
90년대 소설에 나타난 돈"을 통해 "현대사회에서 돈은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기호이자 개인의 삶을 지배하는 도구"라며 돈으로 인한 비극을 되짚었다.

정치자금을 풍자한 최일남씨의 "우리나라의 입", 모든 가치기준을
돈에 두는 사람들의 초상인 이청해씨의 "숭어", 자금난으로 자살하는
중소기업 사장얘기인 성석제씨의 "새가 되었네", 서민들의 내집마련 꿈을
다룬 김이구씨의 "허구의 집"등에는 빈부격차나 노사대립 차원을 넘어
"저마다의 삶을 지탱하는 존재이자 목적인 돈"의 생리가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다.

김종희 (경희대 교수)씨는 "소비시대의 문학"에서 "모든 가치가
상품화되고 시장가격으로 평가되는 시대일수록 문학이 가진 정신적 덕목은
더욱 소중해진다"며 "상업주의가 판치는 불모의 광야에서도 문학은
생명력과 활기찬 대응력으로 희망을 제시하면서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번 세미나에는 시인 허영자 김여정 우재욱 정규화씨 소설가 전범성
이문구 김병총 김홍신 박광서 백시종 안혜숙씨 아동문학가 안순혜
문학평론가 장백일 윤병로 임헌영씨 등 50여명이 참가해 열띤 토론을
벌인다.

< 고두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