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체험한 마지막 세대로서 비극적 현대사와 6.25를 객관적으로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이념대립보다 인간의 본질문제에 초점을 맞췄지요"

중견작가 김원일(55)씨가 전쟁으로 인한 민족의 시련을 그린 대하소설
"불의 제전" (전 7권 문학과지성사)을 완간했다.

80년 "문학사상"에 연재를 시작한지 18년만에 완성한 셈이다.

"10살때 전쟁을 겪었는데, 작가로서 이 시대를 쓰지 않는다면
직무유기라는 의무감에 짓눌려 왔습니다"

소설은 50년 1월5일부터 10월31일까지 10개월간 작가의 고향인 경남
진영과 서울을 무대로 펼쳐진다.

중심인물은 일제말 학도병 출신의 지식인 심찬수.

여기에 이상적 공산주의자 조민세, 농민운동가 박도선, 지방유지의
아들이자 내성적인 법학도 서성구 등이 가세한다.

조민세는 작가의 부친을 모델로 한 인물.

광복 직후 좌우익 투쟁과 토지개혁 과정, 식민통치로 인한 비극과
6.25발발 등을 중립적으로 그렸다는 점에서 다른 소설들과 차이를 보인다.

"2권까지는 농지개혁 과정과 땅에 집착하는 민중의 모습을 부각시켰고
뒤로 가면서 전쟁의 비극에 무게를 뒀죠. 남로당보다 북로당에 관심을 둔
작품도 아마 이 소설이 처음일 겁니다"

작가는 이 작품을 완결지음으로써 문학의 출발점이자 의무감으로 작용한
분단과 가족사의 울타리로부터 자유롭게 됐다.

"어둠의 혼" "환멸을 찾아서"부터 장편 "노을"을 거쳐 "겨울골짜기"에
이르기까지 "고통스런 환부를 헤집으며" 써온 가족사적 분단소설들이
"불의 제전" 완간으로 마무리된 것이다.

그는 "더이상 분단소설은 쓰지 않을 작정"이라며 "내년쯤 치매문제를
주제로 한 원고지 1천장 분량의 소설을 통해 한국근현대사와 중.노년세대의
삶을 조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고두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