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TV 월화드라마 "여자" (한준영 극본, 오세강 연출)는 처음부터
비정상적인 상황설정과 인물구도로 일관한다.

할머니 어머니 딸 3대에 걸친 여자들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통해 이시대
우리사회의 여자의 존재를 탐구해 보겠다는 이 드라마는 딸인 기남이가
60년대 어머니의 젊은 시절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고향에서 사고를 치고 서울에 올라온 철없는 부잣집 3대독자 "아버지"
서만득 (임현식)은 가난한 하숙집큰딸 "어머니" 최인자 (김영애)에게
첫눈에 반한다.

만득은 다짜고짜 혼인신고부터 하고 인자와 결혼하겠다고 인자어머니에게
떼쓴다.

인자어머니는 만득이 내놓는 돈에 마음이 쏠리고 인자는 하숙하던 다른
고학생을 사랑하면서도 동생들 학비를 대겠다는 만득과 결혼한다.

매우 복잡하고 더이상 극적일 수 없는 상황의 연속인 내용을 드라마는
가볍고 코믹한 터치로 너무 쉽게 풀어나간다.

누가 봐도 한눈에 알만한 표나는 가발을 쓰고 대학생역을 연기하는
임현식이나 고등학생으로 나오는 김영애와 양희경의 모습은 우스꽝스러움을
넘어서서 차라리 애처롭다.

만득이 집안의 반대에 부딪히면 과수원밭에서 자살소동을 벌여
해결하거나 만득과 인자의 결혼식날 인자어머니가 출산하고 만득아버지가
죽는 날 인자가 아이를 낳는다는 설정은 코미디에 가깝다.

인자가 큰딸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만득어머니가 점쟁이의
말만 듣고 인자의 첫애를 유산시키는 장면에서 당시 상황으로는 어쩔 수
없었다는 코멘트만을 덧붙이며 넘어간다.

지금까지 이 드라마가 우리의 할머니와 어머니의 전형으로 제시한
여자들은 하나같이 기구하고 콤플렉스에 시달린다.

여자를 극단적인 불행으로 몰고가는 장본인은 세상물정을 모르는
무능하기 짝이 없는 남편과 난봉꾼,사기꾼인 남자다.

지난해 화제작 "남자대탐험"의 여성작가 한준영은 이야기를 재미있고
지루하지 않게 끌고 나가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이 드라마에서도 속도감있는 전개와 재치있는 언어구사를 보여준다.

하지만 "남자대탐험"에서 3대에 걸친 바람둥이 남자들의 얘기를 통해
보여준 편향적이고 흥미위주의 구성이 이 드라마에서도 재현될 조짐이다.

시놉시스를 미리 살펴보면 곧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등장할 딸들은
각각 2,3명의 남자와 얽히고 설키면서 사랑과 이별, 결혼과 이혼을
거듭한다.

앞으로 두고봐야겠지만 불륜에 의한 가정의 파탄과 3각, 4각구도의
복잡한 애정관계로 점철된 이야기를 통해 우리시대 "여자"의 삶을
얼만큼이나 진지하게 반영할지 의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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