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을 시작한후 줄곧 느껴온 갈등의 열쇠를 이제 찾은 것같습니다.

내 얘기를 하고 싶은 욕구와 팔리는 옷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사이에서
늘 고민했죠.

동양과 서양, 고전과 현대의 만남이라는 꿈은 "이영희" 브랜드로 추구하고
대중과 함께 호흡한다는 당위는 "싸피"로 채우려고 해요.

이 두 과제를 얼마나 성공적으로 수행하는가에 디자이너로서의 위치가
결정되겠죠"

디자이너 이정우(39.한올패션 전무)씨는 최근 눈에 띄는 성공을 거두고
기쁨에 젖어 있다.

올 3월 파리컬렉션에 내놓은 "이영희-싸피" 제품을 버그도프 굿맨, 벤델
(미국) 조이스 마(홍콩) 등 유명백화점과 프랑스 이탈리아의 고급 편집매장
에서 각각 1백벌이상씩 주문한 것.

특히 그를 고무시킨 것은 미국에서의 주문 증가.

파리에서 이미지를 만든다면 뉴욕은 상업적 성공을 보장해주기 때문에
이 결과는 그간의 노력에 대한 답으로 여겨진다.

그는 알려진대로 디자이너 이영희씨의 딸.

86.88년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문화사절 경험을 통해 국제무대에 눈뜬
이영희씨가 93년 처음 파리컬렉션에 나갈 때부터 이정우씨는 동행했다.

한복 특유의 품위와 우아함, 그리고 여성적 측면을 살린 "이영희" 의상은
많은 관계자를 매혹시켰다.

그러나 이정우씨는 "(이영희는) 누군가 만들어야 할 옷이지만 시장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 때문에 서브브랜드를 계획했다.

꿈을 이룬 것은 96년 가을 "싸피(Sa Fille 불어로 그의 딸이라는 뜻)"를
런칭하면서.

그는 지금 "이영희"와 "싸피" 디자인실장을 겸하며 파리컬렉션에
"이영희-싸피"라는 이름으로 두 브랜드를 함께 내놓는다.

"이영희"가 수직실크 무명 마를 쓸때 "싸피"는 비닐코팅 면스트레치
마/폴리에스터혼방 소재를 사용하고 "이영희"가 격조를 추구한다면 "싸피"는
대중성을 중시한다.

이정우씨는 86년 늦깎이로 패션에 입문했다.

대학(이화여대 약대)을 졸업하자마자 결혼해 두 아들을 키우며 "모범적인
가정주부"로 지내던 그는 "내 일을 하자"는 생각과 동시에 늘 가까이 있던
패션을 떠올렸다.

"늦게 시작한 만큼 꾸물거릴 시간이 없다"며 스스로를 다그쳐온 11년.

한숨돌릴 여유가 생긴 지금 그는 ""이영희"와 "싸피"를 "한국의 샤넬"로
키우고 싶다면 사람들이 웃을까요"라며 환한 미소를 띄운다.

< 사진 김영우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