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밤 신부는 시를 한수 읊고 "낭군께서 대구를 채워주시면 잠자리를
같이 하겠다"고 말했다.

"솜타는 활소리 (탄면궁향)/흰 구름더미 속에서 나는 여름철 우뢰
소리 (백운퇴이생하뢰)"

밤새 대구를 찾지 못한 신랑은 날이 밝은 뒤 근처 산사로 들어가 공부에
열중했다.

그러던 어느날 밤 그는 기막힌 글귀를 얻고 신이 나서 동료들에게
자초지종과 함께 시를 들려줬다.

"뽕잎 먹는 누에 소리 (식엽잠성)/푸른 나무 그늘속에 뿌리는 가을비
소리 (녹수음중쇄추우)"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한 선비가 그 길로 신부의 처소를 찾아가
대구를 외운 뒤 동침해버렸다.

한문설화집 "파수록"에 나오는 얘기다.

이같은 설화문학을 한글로 옮기고 주제별로 집대성한 총서가 발간됐다.

중견 한학자 김동주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전문위원)씨가 전래 설화문학을
애정 우정 우애 충효 적선보은 풍수지리 일화 등으로 분류, 전 10권의
"설화문학총서" (전통문화연구회)를 펴낸 것.

1차로 5권이 나왔다.

제1권 "밝은 달아 수놓은 베개를 엿보지 말아다오"와 2권 "밤바람아
무슨 일로 비단 휘장을 걷느냐", 3권 "매화는 피리 소리에 취하여
향기롭구나"에는 남녀간의 애정을 다룬 얘기가 담겨있다.

번득이는 풍자와 해학, 눈물겨운 사랑의 파노라마가 현대소설의 재미
못지 않게 펼쳐진다.

우정.우애편인 4권 "사립문 앞에서 친구를 맞아오네"와 충효.
적선보은편인 5권 "남아가 한번 눈물을 훔친 뜻은"에도 삶의 귀감이
될만한 내용들이 들어있다.

대부분 권선징악을 강조한 얘기지만 민속학 연구자료와 우리민족의
숨겨진 생활상을 엿보게 하는 내용도 많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고대소설과 "닮은꼴 얘기"들이 발견되기도 한다.

의리와 정절을 지킨 "춘향전"처럼 아름다운 러브스토리가 지역이나
시대에 따라 여러 형태로 갈라져 나오는가 하면 "박씨부인전"
"사씨남정기"를 닮은 이야기도 많고, "심청전"류의 설화도 한둘이 아니다.

편역자 김씨는 "우리문학의 뿌리인 설화는 화자에 따라 얼마든지 새롭게
창조되고 형상화될수 있다"며 "이번 작업이 고대소설 연구와 제3의
문학창출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우리민족은 옛부터 이야기를 즐긴 만큼 수많은 신화와 전설 민담 등을
구비설화와 문헌설화로 남겼다.

그러나 대부분 엄격한 유교문화의 벽에 가려 "야담"이나 저속한 읽을
거리로 전락하는 바람에 그에대한 연구와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게 사실.

김씨는 "설화는 문학뿐만 아니라 당시의 문화 사회 역사연구에 귀중한
자료"라고 강조하면서 "한문이라는 특수한 형태속에 숨겨져 빛을 잃고
대중에게 외면돼온 설화문학의 발굴이야말로 민족문학에 대한 재인식이자
새로운 발돋움의 계기가 될것"이라고 역설했다.

< 고두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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