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문열(49)씨가 5년만에 새 장편소설 "선택" (민음사)을
내놓았다.

지난해 "세계의 문학" 가을호와 겨울호에 1,2부를 연재하다 중단한 뒤
나머지 3,4부를 덧붙여 펴낸 것.

조선 선조때 태어나 숙종때 세상을 떠난 정부인 장씨의 입을 빌려
현대여성들에게 바람직한 삶의 덕목을 일깨우고자 하는 소설이다.

작가는 "연재가 시작된 직후 반페미니즘 작품으로 낙인찍혀 집중적인
포화를 받았다"며 "각부 앞머리에 페미니즘비판으로 읽힐 만한 구절이
있긴 하지만 여기서 비판한 것은 저속하고 천박하게 추구되는 요즘의
잘못된 페미니즘"이라고 강조했다.

"한쪽으로 기운 배를 바로 세우는 길은 균형을 회복하는 일이지 모든
짐을 다른 쪽으로 옮기는게 아니지요"

이 작품은 장씨부인이 들려주는 "여자의 일생"을 4단계로 비추고 있다.

작가는 주인공의 삶을 그리면서 "세상의 슬픈 딸들에게" "세상의 고달픈
아내에게" "혼란의 시대에 빠진 어머니들에게" "사라진 큰 어머니들에게"
라는 부제를 달아 여성이 "선택"해야 할 길을 제시한다.

작가의 발언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난 부분은 1부 첫머리.

가정에서 뛰쳐 나오기를 선동하는 극단적 페미니즘과 "이혼경력을 무슨
훈장처럼 가슴에 걸고 남성들의 위선 이기 폭력성 권위주의를 폭로하며
그들과 싸운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는" 일부 여성운동가, "이혼이 "절반의
성공"쯤으로 정의되고 간음은 "황홀한 반란"으로 미화되는 세태"를
걱정하는 대목이다.

그는 여기에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아내로서 이 세상을 유지하고
어머니로서 보다 나은 다음 세상을 준비하는 것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라며 "여자의 길"을 택한 장씨의 어린 시절을
대비시킨다.

2부에서는 성취욕 때문에 아이갖기를 거부하거나 자유의사를 빌미로
무분별한 성에 탐닉하는 오늘날의 아내들에게 "가문은 자아확대의 기회이고
남편은 귀한 손님이며 정절은 시차를 둔 정사"라며 어떻게 사는 것이
아내로서 올바른 자세인가를 밝힌다.

3부에서는 어머니의 역할과 관련해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세상의
바탕을 이룩하는 일이며 그 한가지만으로도 출산의 가치를 부인하는
천만가지 교묘한 논리에 대적할수 있다"고 말한다.

4부는 큰 어머니 (할머니)로서의 삶을 제시한 것.

"모성이란 자식뿐만 아니라 손주들과 이웃 우리사회로 확대되는 것"
이라며 아랫사람의 모범이 되는 몸가짐과 사려깊은 통찰로 다음세대의
길잡이 역할을 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이씨는 "우리 삶의 본보기가 될 만한 여인상을 역사속에서 발굴해내는
것이 의도였습니다.

모델인 장씨는 직계조상인 실존인물입니다"

그는 "앞장의 부제는 서두에 소설쓰는 이유를 밝혔던 옛 형식에서
빌려온 것"이라며 "작가로서의 고민은 쓸데없는 논쟁으로부터 나를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소설의 표현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주변인물과
배경, 분위기를 통해 사건전개를 추상케 하는 "불리하기 짝없는 옛
방식"으로 얘기해야 하는 점이었다"고 털어놓았다.

페미니즘 논쟁의 물결을 정면으로 돌파하려는 작가의 "선택"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주목된다.

< 고두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