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없는 거지들이 사는 뉴욕의 구멍패인 길거리를 달려가는 늘씬한 리무진
을 생각해 보라. 리무진 안에서는 북아메리카, 유럽, 환태평양, 일부
라틴 아메리카와 그밖의 일부지역등 에어컨이 설치된 후기산업사회 지역들이
무역정상회담을 벌이고 컴퓨터 정보고속도로를 활용하고 있다. 나머지
인류는 그 바깥에서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다"(호머 딕슨 토론토대학 교수)

대부분의 미국 지식인들에게 제3세계는 여전히 지저분하고, 분쟁이 끊이지
않는, 낙후된 지역으로 인식된다.

이러한 점은 "어틀랜틱 먼슬리"의 기고가겸 편집자인 로버트 케이블런
에게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케이블런은 신작 "지구의 변경지대"(원제 The Ends of The Earth)에서
제3세계를 후기산업사회의 "변경"(Ends)으로 규정한다.

아프리카의 대다수 국가, 회교 근본주의자들이 설치는 중동 국가들,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즈스탄등 중앙아시아 국가들, 파키스탄에서
캄보디아까지의 아시아 국가들이 그가 생각하는 변경지대다.

저자가 이 지역을 변경이라고 규정한 것은 단순히 서방 중심의 지리적
개념을 적용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변경에 대한 그의 관심과 안타까움에서 비롯됐다.

저자는 서문에서 "빈민굴여행을 통해 전반적으로 불길한 제3세계의 미래를
조명해 보고자 했다"고 밝혔다.

케이플런은 이 지역을 1994년부터 2년 가까이 여행했다.

여행의 당초 목적은 변경지대의 환경악화와 인구폭발의 영향을 직접 조사
하려는 것이었다.

그는 아프리카에선 임신부를 찔러 죽이는 군인을, 중앙아시아에선 곰팡이
냄새나는 판자집을, 중동에선 종교광신에 의한 인간 학대를, 서남아시아에선
기아에 허덕이는 아이들을, 동남아시아에선 매춘에 방치된 십대소녀들을
각각 발견한다.

세계의 한쪽은 에어컨이 잘 가동되는 리무진을 타고 다니는데 다른 한쪽은
왜 시궁창에서 헤어나질 못할까.

그가 제3세계의 문화와 정치, 민족적 차원에서 해답을 찾고자 한다.

오랫동안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해 왔던 이 지역들은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세계적 물결에서 제국주의 침공을 받아 독자적인 문화를 지켜내지 못했다.

이에따라 식민지에서 해방된 이후 민족적인 국경이 급속이 와홰되고
정치적 충돌이 자주 벌어진다.

이런 혼란이환경및 인구문제와 맞물려 걷잡을수 없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
바로 케이플런이 바라보는 제3세계의 현주소다.

저자는 한발 더나가 제3세계 문제가 21세기엔 세계적 문제로 불거질수
있음을 경계한다.

제3세계 국가들의 문화정체성 붕괴, 정치적 무정부상태, 경제파탄, 인구및
환경의 악화등의 결과로 다른 축도 무너질수 있다는 경고를 잊지 않는다.

케이플런은 이 책을 통해 제3세계의 희망적인 전망이나 해결책을 내놓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긴 여로를 따라 우연히 만났던 사람들의 호흡, 분노와 체념,
증오등을 담고 있는, 우울하면서도 따가운 시선을 생생히 느낄 것을 기대
한다.

이 시선을 어떻게 바꾸느냐는 것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진다.

한국경제신문사 간, 황건 역, 1만2천원.

<박준동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