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영화가 몰려온다"

영국 감독 앤터니 밍겔라의 "잉글리시 페이션트"가 올 골든글로브
최우수 작품상에 이어 아카데미상 9부문을 휩쓸면서 미국을 비롯한
세계 영화계에 "영국 영화의 세계 제패"를 점치는 목소리가 높다.

영화 1편만을 놓고 호들갑을 떠는 것은 아니다.

영국 영화는 최근 칸느영화제와 골든 글로브, 아카데미 등 해외
영화제에서 유례없이 선전하고 있고 흥행 성적도 평균 이상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경우만 봐도 그 양상은 뚜렷하다.

"트레인스포팅" (감독 대니 보일) "비밀과 거짓말" (감독 마이크 리)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감독 스티븐 프리어즈) 등이 모두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관객의 발길도 이끌어 냈다.

이런 붐에 힘입어 "쥬드" (감독 마이클 윈터바텀)와 "조지왕의 광기"
(감독 니콜라스 히트너)가 4월5일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비밀과 거짓말"은 96년 칸느영화제 그랑프리, "쥬드"는 96년 칸느영화제
공식 초청작.

"조지왕의 광기"는 칸느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따냈으며 95년 아카데미상
4부문 후보에 오르고, 96년 영국아카데미 11부문 상을 받았다.

영국 영화가 세계 영화의 선두에 나선 것이 처음은 아니다.

데이비드 린은 "콰이강의 다리" (57년) "아라비아의 로렌스" (62년)로
작품.감독상, 로렌스 올리비에는 "햄릿" (48년)으로 작품상을 받았고,
82년에는 휴 허드슨이 "불의 전차"로 작품상 등 아카데미 4부문을 석권했다.

영국 영화의 성공 요인은 2가지로 풀이된다.

"표면적으로는 엄청난 제작비를 들여 첨단 효과를 활용하는 미국 영화가
호소력을 잃었기 때문이며 그 뒤에는 영국의 뿌리깊은 고전 (문학)과 영화
(리얼리즘) 전통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영화평론가 양윤모씨
(청주대강사)의 분석.

인공효과에 의존하는 미국 영화가 소재빈곤을 느낄 때 영국 고전으로
회귀한다는 것이다.

수차례 리바이벌되는 세익스피어 원작 ("햄릿" "로미오와 줄리엣"
"오델로"), 토마스하디 원작 ("테스" "주드") 영화들, 그리고
"센스&센서빌리티" 같은 18~19세기 영국 귀족사회 배경의 작품은
제작자본의 국적을 떠나 영국 영화에 편입된다.

캔 로치 (95년 칸느영화제 수상작 "랜드&프리덤"), 대니 보일
("트레인스포팅") 등에 의한 리얼리즘 영화의 맥이 살아있는 것도 큰 힘.

"비밀과 거짓말"은 리얼리즘뿐 아니라 진보된 의식도 보여준다.

흑인 인텔리와 백인 노동자의 대비는 미국 영화의 도식을 깬 것.

"트레인스포팅"과 "아버지의 이름으로" 등 아일랜드영화는 비판의식으로
영화사에 한 획을 긋고 있다.

영국 영화계는 "영국은 누벨바그 (불)나 뉴저먼시네마 (독) 같은 용어는
만들지 못했지만 그 어느곳보다 튼튼한 문화적기반을 갖고 있음을
드러냈다"며 자축하는 분위기다.

< 조정애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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