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가슴 아파하다가 다른 사람을 만난다.

일상적인 줄거리지만 헤어짐에 대한 생각과 대처방법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질수 있다.

우리영화 "패자부활전" (감독 이광훈)과 프랑스 영화 "라빠르망
(L''Appartement)" (감독 질 미무니)은 젊은이들의 만남과 이별에 관한
2편의 리포트다.

"패자부활전"은 당돌한 여자주인공이 변심한 애인에게 한껏 앙탈부리고
복수(?)하다가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맛본뒤 새 남자에게 달려간다는 이야기.

"라빠르망"은 이와 반대로 3가지 다른 타입의 여자앞에서 머뭇거리는
남자와 사랑하는 마음을 털어놓지 못하고 2년간 남자주위를 뱅뱅 도는
여자를 그렸다.

"동양인은 말못하고 눈만 쌩긋하는데 반해 서구인들은 거침없이 마음을
표현한다"는 고정관념을 단번에 깨버리는 작품들이다.

"패자부활전"은 흥행성공의 보증수표라 할만한 작가 주찬옥 이광훈
감독과 미남미녀배우 장동건 김희선이 모여 만든 영화다.

주씨는 방송극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고개숙인 남자", 이씨는
코미디영화"닥터봉"으로 이름을 얻었다.

애인 (이진우)을 다른사람 (김시원)에게 뺏긴 여자 (김희선)가 상대방의
애인 (장동건)에게 다가가 함께 복수하자고 제안했다가 결국 그와 새로운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줄거리.

사진작가 큐레이터 수의사 등 다채로운 직업과 이들의 원룸아파트
스튜디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영화는 얼핏 트렌디드라마를 연상시킨다.

노랑 (김희선의 노란색 티뷰론) 파랑 (그의 원룸) 색으로 알록달록하게
바뀌는 배경에 "비타민도 과다 복용하면 해로워"류의 코믹한 대사가 간을
맞춘다.

하지만 실연의 아픔에 애태우는 여자의 모습은 리얼하다.

옛 남자가 새여자와 결합하는 걸 막기 위해 한바탕 푸닥거리를 벌인뒤
결국 평온을 되찾은 여자를 그린 일종의 "성장소설"이다.

그러나 한밤중 아파트와 공항의 비상 등을 울려 사람들을 대피하게
만드는 등의 무리한 설정은 없는게 낫다는 평.

"라빠르망"은 프랑스 영화답지 않게 빠른 장면 전환이 특징.

주인공 (뱅상 카셀)은 약혼녀와 2년전에 만난 "영원의 여인" (모니카
벨루치) "지금 눈앞의 여인" (로만 보링저) 사이에서 혼란스러워 한다.

약혼녀에게는 의무감밖에 없으며 2년전에 만났다 헤어진 여자를 늘
마음속에 그리는 한편 자기에게 사랑을 호소해오는 여자때문에 갈피를
못잡는 것.

"라빠르망 (L''Appartement. 원발음 라빠르뜨망)"은 아파트의 프랑스어.

독립된 공간에서 자기 존재와 사랑을 진지하게 반추하는 청년을 그렸다.

"영원의 여인"을 사칭하는 기묘한 여자 로만 보링저가 마지막에 외치는
"누군가를 먼발치에서 사랑해야 하는 이의 아픔을 아느냐"는 대사는
미스테리를 풀어주는 동시에 극에 깊이를 더한다.

그러나 이때문에 관객에 따라서는 "별수 없는(?) 프랑스 영화"라 평할
수도 있다.

수입사 서우영화사와 홍보사 무한은 15일 서울 명동 유투존 정문앞에서
"미스 벨루치 선발대회"를 연다.

"패자부활전"은 22일 서울 씨티 피카디리 녹색 키네마극장 등 9곳,
"라빠르망"은 22일 명보 브로드웨이극장 등 8곳에서 개봉된다.

< 조정애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