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높이지 않고도 하고 싶은 말 다하는 영화.

"위선의 태양"에는 "혁명"이 담겨 있으면서도 피냄새가 나지 않는다.

깊이있는 주제의식과 영상미학, 극의 완급조절이 뛰어난 작품이다.

30년대 스탈린 치하 러시아.

정적숙청과 강제노동 등 "험한 세상"의 틈새를 순진무구한 6살 소녀가
들여다본다.

비극적인 결말에도 불구하고 화면은 아름답고 포근하다.

강물위에 비친 풍경과 대가족의 화목함이 수면아래 역사의 물줄기와
자연스레 섞인다.

자연광에 초록빛을 투영시킨 색감연출도 돋보인다.

주인공은 행방불명된지 10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드미트리와 옛애인
마루샤, 그녀의 남편 세르게이.

드미트리는 어릴때 마루샤의 아버지에게 음악을 배우며 한집에서
자랐지만 혁명영웅 세르게이에게 연인을 뺏기고 타국으로 떠돈 인물.

추억을 떠올리며 동요하는 마루샤를 사이에 두고 두 남자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시작되는데 멋모르는 6살짜리 딸 나디아는 처음보는 "삼촌"을
마냥 좋아하기만 한다.

그림같은 별장과 호수, 피아노 선율을 타고 흩어지는 웃음꽃.

그러나 스탈린의 비밀경찰인 드미트리는 "휴가"가 끝나는 날 세르게이
에게 "연행"을 통보한다.

극의 절정은 음악회초청 형식으로 체포돼가는 아버지와 딸의 이별.

강둑까지 리무진을 운전하겠다며 깡총대는 소녀의 해맑은 눈과 까르륵
거리는 웃음이 가슴시리다.

남은 사람들은 "세월이 흐르면 잊혀질 이별의 아픔이여, 잔인한 봄이여"를
노래하고 자동차는 황금빛 밀밭 사이로 멀어진다.

최고 통치자의 정적을 태운 차가 들판 한가운데에 멈춰서자 모든 것이
침묵한다.

남은 것은 언덕너머로 떠오르는 스탈린의 대형 초상화뿐.

러시아 탱고의 비장미가 주제를 함축적으로 전달해준다.

감독 주연 제작 각본 등 1인4역을 맡은 미 할코프의 연출력이 칸영화제
그랑프리 (94)와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 영화상 (95)으로 빛났다.

( 3월22일 피카소극장 등 개봉 예정 )

< 고두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