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누가 더 잘 웃기나.

요즘 TV드라마에서 펼쳐지는 코믹연기의 양상은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한다.

중견이나 신인, 남자나 여자 탤런트할것 없이 브라운관에서 갈수록 영역이
넓어지는 코믹연기의 장에서 우뚝 서보고 싶어한다.

몰래 숨겨 놓았거나 갈고 닦아온 웃기는 솜씨를 발휘하며 각양각색의 코믹
연기를 선보인다.

누구랄 것 없이 코믹한 캐릭터를 맡지 못해 안달이다.

비련의 여인이 어느순간 못말리는 공주병 환자가 돼있는가 하면 점잖빼던
신사가 푼수떠는 아저씨로 나와 그동안 억누르고 있던 끼를 마음껏 발산한다.

불과 10년전만 해도 코미디연기를 꺼려하던 태도는 더이상 찾아볼 수 없다.

희화적으로 그려진다고 해서 경시하던 풍토도 사라진지 오래다.

오히려 연기자 스스로 남을 웃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에 대해서
뿌듯해 한다.

또 코믹연기를 개성있게 잘만 해내면 인기를 얻는 것은 물론 시청자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을 수 있다.

TV에서 코믹연기의 위상이 높아지기 시작한 것은 90년대에 들어서부터.

91년 MBCTV 주말연속극 "사랑이 뭐길래"가 공전의 히트를 친 이후 각
드라마에 코믹한 요소가 두드러지게 많아졌다.

93년 우리나라 시트콤(시츄에이션코미디)의 효시가 된 SBSTV "오박사네
사람들"이 인기를 끌자 이와 유사한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왔다.

일일연속극과 일요드라마도 코믹한 에피소드를 담은 가족드라마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최근엔 연예오락프로그램에서도 젊은층을 겨냥한 시트콤형식의 단막극이
주종을 이룬다.

멜로물에서도 감초이상의 역할을 하는 조연들의 활약없이는 인기를 얻기
힘들다.

이처럼 확대된 코믹연기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연기자의 유형은
크게 5가지.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고 있는 유형은 주로 멜로물 주인공을 연기하다
코믹조연으로 변신한 케이스.

대표주자는 SBSTV 주말극장 "꿈의 궁전"에서 주책없고 단순한 레스토랑
사장 양금숙역을 천연덕스럽게 소화하고 있는 이응경.

지난해 MBCTV 화제의 드라마 "애인"과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보여준 다소곳하고 세련된 모습은 간데온데 없다.

지적이고 똑똑한 인물을 주로 맡아온 서인석도 "꿈의 궁전"에서 한동수역을
맡고는 빨간 코주부가 돼 나타나 시청자들을 놀라게 했다.

공주병신드롬 메이커 김자옥도 MBCTV "오늘은 좋은날"의 "세상의 모든
딸들"코너와 일일시트콤 "남자셋 여자셋"에서 각각 푼수덩어리 공주병환자와
노처녀 대학교수로 맹활약하며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77년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받은 윤미라도 빼놓을 수 없다.

"서울의 달"의 카페마담 옥희에서 발동된 푼수연기는 "바람을 불어도"에서
활짝 피고 현재 MBCTV일요드라마 "짝"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영화 "장군의 아들2"에서 비련의 여인역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송채환은
"옥이이모"의 질펀한 작부역과 "엄마의 깃발"의 촌스런 아주머니역에 이어
3월부터 시작되는 SBS 시트콤 "OK목장의 여자들(가제)"의 주인공으로 등장할
예정.

이밖에 SBS 시트콤 "아빠는 시장님"의 한진희 최민식, "꿈의 궁전"의
김창숙등도 같은 범주에 속한다.

두번째는 코믹연기로 일가를 이룬 터줏대감들.

"한지붕 세가족"에서 개성있는 연기대결을 펼쳤던 임현식 최주봉,
"오박사네 사람들" "오경장"등 시트콤에서 코믹연기의 진수를 보여준
오지명, "왕릉일가"의 박인환, 현재 "형제의 강"에서 독특한 웃음을 선사
하고 있는 남포동등은 누구도 넘볼수 없는 독자적인 경지에 다다른 배우들
이다.

TV연출가들의 "객석캐스팅"이 본격화된 94년부터 브라운관에 등장한
연극인들도 나름대로 군을 이룬다.

SBS 일요시트콤 "L.A 아리랑"과 MBC 일일드라마 "욕망"에 출연중인 이정섭
은 장기인 곰살맞고 중성적인 연기로 인기를 끌고 있다.

KBS "내안의 천사"에서 능글맞은 만화가역으로 나오는 최종원은 시트콤
"OK목장의 여자들"에서도 노련한 코믹연기를 펼칠 예정.

권해효(MBC "환상특급")와 박광정(SBS "연어가 돌아올 때")도 개성있는
마스크와 다부진 연기로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연극을 주무대로 활동하면서 TV드라마뿐 아니라 영화에서도 단골
조역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게 특징.

다음은 오랫동안 단역에 머물러 있다 코믹연기로 우뚝선 탤런트들.

악역전문이었던 조형기는 "엄마의 바다"에서 특유의 익살을 과시하며
눈길을 끈 뒤 버라이어티 연예오락프로그램을 누비며 스타의 자리에 올랐다.

"바람은 불어도"에서 "황씨아저씨"를 연발하던 손현주는 "첫사랑"의
주정남역으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첫사랑"에서 의리의 사나이 동팔로 나오는 배도환은 코를 쓱 문지르는
특유의 제스처 하나로 인기를 모았다.

경우가 약간 다르지만 KBS "슈퍼선데이"의 "금촌댁네 사람들"에서 무능하고
엉뚱한 아버지역으로 웃음을 선사하는 김용건도 코믹연기로 더욱 빛을 본
탤런트.

"금촌댁네 사람들"의 성공을 바탕으로 미니시리즈 "엄마는 출장중"에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꿈의 궁전"에서도 코믹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은 떠오르는 신세대 푼수연기자들.

이들의 선두주자는 이의정.

깜찍함과 발랄함에서 단연 돋보이는 이의정은 얼마전 "남자셋 여자셋"에
합류, 드라마에 탄력을 부여하며 10%대에 머물던 시청률을 20%대로 끌어
올렸다는 평.

같은 드라마에 나오는 우희진, KBS 일일연속극 "오늘은 남동풍"에서
코맹맹이 푼수로 나오는 윤해영, "아빠는 시장님"의 김민희 이상아,
"욕망"과 "연어가 돌아올 때"의 윤현숙도 통통 튀는 연기를 펼치고 있다.

탤런트들이 코믹연기에 의욕적으로 달려든다 해서 모두 성공을 거두는
것은 아니다.

"모든 연기의 끝은 코미디"라는 말이 있다.

코믹연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지나치면 실소를 자아내고 모자라면 눈뜨고 볼 수 없다.

대부분의 방송관계자들은 드라마의 코믹화 흐름은 계속될 것으로 본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져 삶에서 웃음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겨서"
"사회가 복잡다단하고 선진화될수록 사람들은 가벼운 코미디물을 선호해서"
등이 그 이유.

어쨌든 시청자들은 제대로 된 코믹연기를 원한다.

좋은 코믹연기자가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송태형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