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정 : 한경서평위원회
저자 : 스티븐 레비/김동광 역
출판사 : 사민서각

간혹 신문을 보면 나이 어린 해커가 다른 사람의 온라인 구좌에서 돈을
횡령했다든지, 아니면 어떤 공공기관의 주컴퓨터에 바이러스 프로그램을
날려보냈다는 기사가 소개된다.

이를 볼 때마다 우리사회에서는 해커라는 말이 남용되고 오용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예를들어 어떤 사람에게 사기를 치는데 컴퓨터가 조금이라도 사용되면
이를 해커의 짓거리라고 단정하는 언론의 태도는 올바르지 않다고 본다.

일전에 언론지상을 통하여 해커로 알려진 몇사람들의 해킹수법은
해킹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공갈에 해당되는 유치한 수준에 불과한 것이었다.

자신을 진정한 해커라고 자부하는 이들이라면 언론에서 벌리는 이런 식의
편파보도에 크게 분노할 것이다.

얼마전에 열린 국제해커대회에서도 그들은 자신들에 대한 사회의 편향된
시각을 격앙된 목소리로 비난하였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자유와 창조를 목표로 삼는 해커와 파괴와 경제적인
이득을 목적으로 삼는 크랙커(Cracker)는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커, 그 광기와 비밀에 관한 기록"은 해커는 단순히 시스템을 분석하거나
몰래 들어가서 데이터를 훔쳐나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정연한
세계관을 갖고 있는 집단임을 말하고 있다.

철학이 없는 기술자는 결코 해커라는 이름을 쓸 수 없다.

이렇게 컴퓨터가 발달하기까지는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아무런
보상도 없이 평생을 헌신한 수많은 해커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러는 빌 게이츠와 같이 억만장자로 성공한 사람이 있는가하면, 조용히
속세와 단절한 채 산속에서 요가나 수행하며 지내는 극단의 염세주의자들도
있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여러 부류의 해커들의 일대기를 총정리한 연대기적
역작이다.

우리는 이 책에서 그들의 열정적인 노력이 어떤 세계관에 기인하고 있는지,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전생애를 바쳐 노력하게 하는지를 다양한 해커들의
삶의 궤적을 통해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알 수 있듯이 단순히 더 우월한 기술이 상업적으로 항상 성공을
보자하는 것은 아니다.

억만장자로 성공한 빌 게이츠가 당시대의 해커들에 비해서 뛰어난 것은
비밀스런 해킹기법을 독점했기 때문이 아니라, 마케팅과 장사에 대한 타고난
수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저자가 밝히고자 하는 것은 해커들의 삶의
의미는 그 과정에 있는 것이지, 상업적인 성공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컴퓨터 기술만 있으면 자신도 미국의 성공한 "해커"와 같이 떼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꼭 읽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사회에서는 어린 학생들까지 해커를 오해하여 너무 일찍부터
상업주의에 깊이 물들어 있다.

진정한 해커라면 불을 훔쳐주고나서 고통을 당하는 프로메테우스와 같은
용기를 가져야 할 것임을 이 책의 많은 사례는 말해주고 있다.

이 책은 선지자 해커에 관한 정보화 시대의 구약성서라고 하겠다.

조환규 < 부산대교수.전자계산학과>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