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민영 <예술의전당 이사장>

소년시절부터 무수한 책을 읽어왔지만 나이들어서도 가끔 반복해서
들춰보는 책은 그렇게 많지않다.

나는 그런 몇가지 책중에 H D 소로우의 "월든"(강승영역)을 서슴지않고
추천하고 싶다.

사실 이 책은 재미있는 소설책도 아니고 그렇다고 심오한 종교서적이나
철학서도 아니다.

단지 미국의 한 문필가가 속세의 명리를 떠나 로키산맥 깊숙이 파묻혀
살면서 자연과 인생에 대한 명상을 기록한 책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책 내용은 깊은 산속 월든호수가에 살면서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이 전부이다.

그러나 문명과 완전히 등지고 자연에 흠뻑 빠져 살면서 느끼고 생각한
것에 대한 기록치고는 너무나 아름다운 문체와 지혜로운 내용이어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동을 느끼게 한다.

특히 물질문명의 폐해와 인간의 세속적 욕망이나 위선등이 얼마나
그릇된 것인가를 자연의 진솔함과 대비시킴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도덕적 각성을 불러 일으키게하고 참다운 인간의 길이 무엇인가를
암시해준다.

저자 스스로가 마치 구도자처럼 금욕과 절제생활을 하면서 우주의
섭리와 자연의 아름다움,외경등을 쓴 것이어서 구구절절이 독자의
가슴을 치고도 남는다.

오죽했으면 미국작가 E B 화이트가 미국 대학생들에게 졸업장 대신
이 책을 한권씩 주자고 제안했겠는가.

요즘처럼 부정부패로 인해 온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는 때 이러한
책은 독자에게 하나의 청량제 구실을 넘어 충격마저 줄지도 모른다.

또한 오늘날 핵폐기물을 비롯한 환경오염이 심각한 때에 이 책은
녹색운동의 중요성도 예언한 듯 싶다.

왜냐하면 저자가 세상의 죄악을 물질문명과 그에 따른 인간의 욕망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감각적인 대중문화가 범람하고 저속한 책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는 요즘 이 책은 하나의 정화제도 될 수가 있다고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