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는 허구다.

허구에는 SF처럼 실체가 없는 것도 있다.

그러나 일단 어떤 현실을 그리겠다고 선언한 드라마라면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속아줄 준비가 돼 있는 시청자들에게 현실감을 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일부러 시청자들을 낯설게 하거나 "깨게" 만드려는 의도가 없는 한
말이다.

이를 위해선 극본 연기 음악 카메라움직임 분장 의상 소품 등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하면 안된다.

형식의 파격이나 실험성도 내용을 효과적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겉돌면
반감만 살 뿐이다.

6,7일 1,2회가 방영된 KBS2TV 미니시리즈 "내안의 천사" (극본 오수연,
연출 전기상)는 여러 면에서 시청자들을 "깨게" 만들었다.

1회에는 우진 (정찬)과 남현 (권오중), 규영 (정성환) 그리고 이들의
"내안의 천사"인 유경 (김지수)의 어릴 때부터 고등학교와 대학시절,
사회에 진출한 현재까지 상황이 빠르게 진행됐다.

과감한 생략과 스피디한 전개까지는 좋았으나 이들 4명의 캐릭터와
관계 묘사에 일관성이 없어 혼란을 줬다.

특히 남현은 어릴때 소심하고 내성적인 인물로 묘사되다 성인이 돼서는
털털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고등학교때까지는 유경을 짝사랑하는 정도가 가장 심했으나 대학생이
되고는 덤덤하다.

오히려 규영이 냉가슴을 앓고 우진이 제일 적극적이다.

등장인물들의 의상과 배경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전혀 느낄 수 없다.

고등학교때나 대학때나 이들의 옷차림은 언제나 현재다.

우진 등이 대학에 갓입학했을 때 화면에 보이는 최신식 휴게실이
학교안에 있었을까.

80년대 시위 기록필름과 교차편집되는 유경의 시위장면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다.

골수운동권이던 유경은 시위대 맨앞에서 돌을 던진다.

그런데 그 짙은 화장과 화려한 차림은 뭔가.

김지수는 어떤 상황에서도 예쁘게만 보이려고 작정한 것같다.

구성의 탄탄한 짜임새나 대사의 아기자기한 재미보다 CF를 보는 듯한
감각적인 영상과 음악이 이 드라마의 승부수로 보인다.

신세대들의 삶과 사랑,아픔을 담아내는 데는 감각적인 형식과 다소의
파격이 효과적일 수 있다.

하지만 이같은 형식으로 대사처리조차 어설픈 청춘스타들이 주인공들의
내면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허구란걸 뻔히 아는 시청자들에게 감동과 재미를 주기 위해서는 현란한
그림을 그리려는 노력보다 신경써야 할 부분들이 많아 보이는 드라마다.

< 송태형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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