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때 유난히 커보이던 감나무가 철들 무렵엔 작아뵌다.

자라면서 우리는 나무보다 더 큰 것들이 많고, 또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세계가 있다는 걸 배운다.

세상은 거기에 맞는 눈높이를 요구한다.

때로는 삶의 높낮이에 자신의 키를 맞춰야 하는 경우도 있다.

험한 세상을 곧이 곧대로만 살다간 허방다리 짚기 일쑤고, 자주 허둥대다
보면 사회로부터 소외되기도 한다.

누구나 거대한 사회의 물결에 순응하며 상처받지 않으려 애쓰지만,
문제는 그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데 있다.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의 젊은 화가 네빌이 그 축에 든다.

17세기 영국 귀족들은 부를 뽐내기 위해 화가들을 고용하는 일이
많았는데 네빌도 허버트 백작부인으로부터 남편이 없는 동안 영지를
열두폭에 그려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런데 부인은 그가 원할땐 언제든지 잠자리에 응하겠다는 말을
귀띰해준다.

네빌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묘사해야 한다는 원칙주의자.

작업도중 아무것도 움직이지 못하게 통제하면서 그림을 그리던 그는
없었던 옷가지가 정원에 널리고 엉뚱한 사다리가 놓여지는 등 이상한 일을
겪으면서도 그것들을 고지식하게 다 그린다.

연못에서 백작의 시체가 발견되자 그집 딸 탈만부인은 네빌의 그림속에
살인이 암시돼 있다고 위협,성관계를 요구한다.

의구심속에 모녀간을 오가던 그는 자신이 생식능력없는 탈만부부의
"종마"로 이용당했음을 깨닫지만 그림을 완성하기 직전 복면한 귀족들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재산상속을 둘러싼 귀족집안의 음모에 희생된 네빌의 모습이 도도한
세상의 물굽이에 휩쓸려 기우뚱대는 현대인의 자화상과 닮았다.

노련한 감독은 열두개의 삽화를 미스터리기법으로 연결하면서 세상과
자아 사이의 불협화음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화가와 카메라, 관객의 시점을 절묘하게 교차시킨 연출력과 섬세한
색감조화가 영화읽는 맛을 더한다.

( 28일 동숭시네마텍 개봉 예정 )

< 고두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