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한국 영화계의 최대 격변기였다.

헌법재판소의 사전심의 위헌판결로 오랜 검열족쇄가 풀린데다 신인
감독들이 대거 등장해 한국영화의 르네상스시대를 열었다.

또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성공적으로 개최돼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며 대기업과 외국영화사들의 제휴 및 우리영화의 해외진출도
크게 늘었다.

그런가하면 영화배급과 대종상 비리의혹에 연루돼 충무로의 거물들이
잇따라 구속되고, 공연윤리위원회 존폐와 성인영화전용관 설치 등
영화진흥법개정을 둘러싼 공방도 뜨겁게 이어졌다.

10월초 헌재판결을 계기로 창작환경이 변하면서 영상산업계에 판도재편
바람이 불기 시작했으며, 배급구조를 둘러싼 시장변화도 가시화되고 있다.

96년 영화계에서 가장 눈에 띈 변화는 신인 감독들의 약진.

"은행나무침대"로 연초부터 흥행포문을 연 강제규 감독을 비롯,
양윤호 홍상수 임순례 정병각 한지승 김기덕 임종재 김태균 오일환 류숙현
김용태 김성수 감독 등이 잇따라 데뷔작을 선보였다.

올해 나온 신인 감독만 30명에 달할 정도.

17일 현재 제작이 끝난 영화는 모두 62편 (잠정 집계)으로 지난해의
64편에는 못미쳤으나 후반작업중인 작품이 많아 내년초에는 개봉 러시를
이룰 전망이다.

흥행기록면에서는 강우석 감독의 "투캅스2"가 70만6,000명 (서울
개봉관)으로 1위를 차지했으며 "은행나무침대"와 "꽃잎"이 그 뒤를 이었다.

외화중에서는 "더 록"이 98만2,500명으로 1위, "인디펜던스 데이"가
98만명으로 2위를 기록했다.

대외업무면에서는 대기업과 외국영화사의 제휴가 활발해 삼성영상사업단이
미국 뉴리전시사의 주식 7.6%를 매입, 국내 판권을 독점키로 계약한데
이어 현대그룹의 금강기획이 프랑스의 카날플러스사와 판권 장기계약을
맺는 등 발빠른 움직임을 보였다.

우리영화의 해외시장진출도 크게 늘어났다.

"은행나무 침대" "투캅스2" "301.302" 등이 국제무대에서 호평받아
곳곳에 팔렸고 "깡패수업"은 제작이 끝나기도 전에 수출계약이 체결됐다.

이가운데 삼성영상사업단이 직배계약으로 홍콩에 배급한 "은행나무
침대"는 개봉초부터 홍콩박스오피스 "베스트5"안에 드는 호조를 보였다.

"꽃잎"은 아시아.태평양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 등 3개부문을 석권
했으며, "학생부군신위"는 몬트리올영화제 최우수예술공헌상,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밴쿠버영화제의 신인감독상격인 용호상, "개같은 날의
오후"는 하와이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차지했다.

칸영화제 신인감독부문에 초청된 "유리"도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정우성과 박중훈이 홍콩및 할리우드에 진출한 것도 올해의 성과.

관객층이 넓어진 것도 특징.

흥행성적으로 보면 아직 미국편중현상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유럽 및
아시아영화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었다.

이란영화붐이 일고 영국감독들도 인기를 누렸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테오 앙겔로풀로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잉그마르베르히만 등 20세기 거장들의 영화가 잇따라 소개된 것도
주목된다.

이같은 관객 저변확대에는 9월에 개최된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크게
기여했다.

30여개국 169편이 출품된 부산국제영화제에는 9일동안 18만6,000명의
관람객이 몰려 영화에 대한 일반의 관심을 입증했다.

"비밀과 거짓말" "안개속의 풍경" "제8요일" "브레이킹 더 웨이브"
"위선의 태양" "붉은 장미 흰 장미" 등 완성도 높은 작품들이 많이 상영돼
할리우드 흥행작에 길들여진 관객들의 시야를 넓혀준 것은 무엇보다 큰
수확이었다.

< 고두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