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문학의 해"였음에도 불구하고 작품 빈곤과 외설 시비, 작가와
출판사에 대한 사법처리 등 반갑잖은 일들로 얼룩졌다.

연초 "문학의 해" 선포식을 갖고 거창한 구상들을 내놓을 때만 해도 창작
활성화와 문학 세계화가 금방 이뤄질 것처럼 보였으나 추수를 끝낸 지금은
"뿌린 씨앗에 비해 소출이 너무 적다"는 평가다.

창작물이 힘을 잃는 바람에 생겨난 빈 자리를 외국번역물이 채웠으며,
성표현의 한계를 둘러싼 음란시비로 출판사의 등록이 취소되는가 하면
대표의 구속사태로까지 이어져 "상처뿐인 문학의 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대형서점들의 문학매장도 줄어들었다.

교보문고 조사에 따르면 올해 문학서적 판매는 지난해보다 20%정도 늘었으나
베스트셀러는 "좀머씨 이야기" 등 외국작가들의 작품이 독차지했다.

하반기에 무명작가 김정현씨의 소설 "아버지"가 인기를 모으면서 겨우
체면치레를 한 정도.

8일 현재 60만부가 팔린 이 소설은 연말까지 70만부를 넘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작품의 경우 문학성보다 명예퇴직바람 등 사회적 분위기로 인한
반사이익이 더 컸다는 것이 일반론이다.

물론 문학계의 성과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몇몇 여성작가들은 독특한 문체와 감수성으로 문단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소설쪽에서는 "염소를 모는 여자"로 평단의 이목을 집중시킨 전경린씨와
은희경 한강 서하진 차현숙씨 등이 "세기말의 비상구를 여는" 작가로 지목
됐으며, 박완서씨와 오정희씨 등도 저력을 확인시켰다.

남성중에서는 이호철 김주영씨 등 중진들과 이순원 박상우 구효서 백민석씨
등이 눈길을 끌었다.

문학평론가 김치수씨(이화여대 교수)는 "영상매체의 영향으로 문학의 영역
이 갈수록 위축돼 안타깝지만 그래도 평년 수준은 된다"고 분석한뒤 "이럴
때일수록 외적인 상황 변화보다 문학의 본질에 대한 성찰이 더욱 절실하게
요구된다"고 말했다.

시부문에서는 "세기말 블루스"의 신현림씨를 비롯 천양희 이인원 김언희
이경림 최영숙씨 등이 독자적인 목소리를 냈다.

시인 고형렬씨(창작과비평 편집부장)는 "사회의 다층적인 모습을 반영하면서
내면세계를 깊게 파고드는 작품들이 늘어났고, 시적 상상력의 다양화나 전통
서정시를 되살리려는 시도가 눈에 띄었다"고 평가했다.

한편 "문학의 해"에 대한 비판도 많았다.

문학의해 조직위원회가 펼친 행사가운데 내실있는 것들이 드물었다는 지적
이다.

상반기에는 동인지컨테스트와 전시회, 문인 독도방문, 특별세미나와 문인
모습및 작고문인 육필전이 고작이었고 하반기에도 시화전과 문학캠프 한민족
문학인대회, "세계문학속의 한국문학" 국제심포지엄 등 일회성 행사들이
열렸을 뿐이다.

이중 긍정적 평가를 받은 사업은 "찾아가는 문학강연회"와 "전국 시낭송
대회" "한국문학지도" 등에 그쳤다.

문인들은 한국문학의 기반조성이나 창작활성화가 이같은 일과성 행사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특히 연례행사에 "문학의 해 기념"이라는 수식어만 붙인 경우도 많아 허울만
좋고 알맹이는 없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차라리 근대문학관 건립과 한국문학번역원 설치를 앞당기는데 힘을 모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결국 문학의 해는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기틀을 마련하기보다 행사위주 사업
에 치중함으로써 "시작은 장대했으나 결과는 미미한 해"였다는게 문학계의
중론이다.

< 고두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