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봉 < 비봉출판사 대표 >

새로운 경제제도를 도입하거나 기존의 경제정책을 변경하기에 앞서
개최되는 공청회나 TV토론을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극히 최근의 일로 불과 몇년전만 하더라도 중대한
국가정책의 수립이나 변경이 밀실에서, 권력가의 이해에 따라서 결정되곤
했던게 우리의 현실이다.

필자가 "염철론"을 읽고 받았던 큰 감격은 우리의 이러한 현실과의
대비때문에 더욱 증폭된 측면이 없지않을 것이다.

이 책은 한의 소제가 백성들의 질고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기원전 81년에 소집한 어전회의에서, 당시 시행되고 있던
경제정책을 중심으로 젊은 엘리트 관료들(현량.문학)과 정부의 고위관리
(대부)들 사이에 쟁론되었던 내용을 환관이란 사람이 생생하게 정리한
것이다.

그 당시 정부에서는 재정수입의 증대를 위해 소금과 철 및 술의 생산과
판매를 독점하고 있었는데, 젊은 관료들이 그것의 폐지를 주장하고 나오자
정부의 고관들이 그것의 존속 필요성을 역설하고 나옴으로써 논쟁이
시작된다.

이 책이 2000년도 더 지난 지금의 우리로 하여금 수없이 많은 밑줄을
그으면서 읽게 만드는 이유는 첫째, 작자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인용하고 있는 풍부한 예증과 전거들이다.

따라서 독자는 그들의 논의전개를 따라가는 과정에서 주제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그것이 국방 외교 정치이념 도덕 인간본성 등에 대해서
갖는 종합적 의미까지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둘째는 시각의 차이와 입장의 차이에 따라서 동일한 사물이나
사회현상이 얼마나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가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유자와 법가, 왕도와 패도, 민생주의자와 부국강병론자 사이의
역사적인 논쟁이 기록되어 있는 이 책이 여태 번역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 또한 우리사회의 한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흥미로울 따름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18일자).